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할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후보자가 내세운 구호는 '경제를 바꾸러 정치에 나선다'였다.
경제관료로서 20여년의 경험과 언론인 이력까지 갖추고 있는 그가 '정치를 통해 경제의 돌파구를 찾겠다'고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17대 국회에 입성한 뒤 19대까지 내리 3선을 달렸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 배지'를 떼고 다시 '경제관료'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경제부총리라는 '중책'도 짊어졌다. 내수침체 등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위기에서 경제를 구할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관료로서 컴백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지식경제부(현재 통상산업자원부) 장관도 역임했다. 당시 장관을 맡으며 400억달러 규모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고 세계 7위의 수출대국 반열에도 올렸다.
정치가로서의 이력도 화려하다. 2002년 9월 이회창 대통령 후보 경제특별보좌관으로 정치와 인연을 맺은 그는 17대 총선에서 국회로 들어가 주요 경제 관련 상임위원장 자리를 두루 거쳤다. 2007년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당시 대표)의 캠프 종합상황실장,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19대 국회에서는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차에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맡았다.
이런 이유 탓에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부터 기재부 장관 기용설(說)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중장기 경제정책 기조인 '경제개혁3개년계획' 입안에도 깊숙이 관여한데다 강력한 추진력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산적한 경제정책 과제를 해결할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1955년 경북 경산 태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안종범 경제수석 내정자와 강석훈·유승민 의원 등과 함께 위스콘신 4인방으로 불린다. 행시 22회로 정부에 들어온 뒤 아파트 투기자금을 회수하는 경제기획원 근무 때는 '아파트 채권 입찰제'를 기획했고 1991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의 경제 분야 초안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