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정책 이대론 안된다] <하> 주객전도 된 주파수 논쟁

경매방식에만 열 올려… 산업발전 등 목적 합의부터
이익 규모·시장영향 등 정확한 분석 선행돼야
요금인상·품질하락 과열경쟁 후폭풍 논의
장비·단말기 수급 측면서 세계각국과 조율도 필요

지난달 21일 경기도 과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열린 주파수 할당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제공=KISDI


장학생 후보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성적이 99점이고, 나머지 한 명은 98점이지만 경쟁자보다 노력파다. 국가에선 둘 중 한 명에게만 장학금을 줄 예산밖에 없다. 99점짜리 후보는 당장 돈을 쥐어주면 최고의 대학에 입학해 정부 장학금 제도의 훌륭한 홍보 모델이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시험 성적만으로 노력파 후보를 떨어뜨리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결국 장학금을 지급할 만한 '진짜 인재'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뽑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에 득이 될지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롱텀에볼루션(LTE) 주파수 경매를 둘러싼 이동통신사들의 논박도 이와 비슷한 구도다. KT에 1.8GHz 인접 주파수(이미 갖고 있는 1.8GHz의 바로 옆 대역폭)가 돌아가면 KT는 손쉽게 2배 빠른 LTE 서비스인 '광대역 LTE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LTE 경쟁에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주도권을 내줬던 KT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게다가 광대역 서비스는 KT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강국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국가로서도 의미가 크다. 이동통신 3사가 한꺼번에 광대역 서비스를 개시할 수 없다면, 한 사업자라도 먼저 기회를 주는 '차선책'을 택해 이동통신 선진국 대열에 설 수도 있다.

하지만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공정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KT가 광대역 서비스를 개시할 경우 7조원 규모의 부당한 이득이 전망된다는 게 두 회사의 주장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통신 산업이 독점인 시절에는 주파수 자원의 효율적 이용이 가장 중요했지만, 경쟁 체제로 전환한 지금은 공정 경쟁도 또 다른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이통사들의 주장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기업 입장'일 따름이다. 결국 정책의 초점은 국민 편익과 산업 발전의 측면으로 맞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이 부분은 논의가 소홀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 교수는 "이번 경매 이후에도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을 텐데, 정부가 이런 부분을 충분히 논의하고 경매를 디자인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경매 목적에 대한 명확한 합의 없이 경매 방식을 정하는 데만 지나치게 몰두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사업자들의 논리에만 치중하느라 본질적인 고민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또 한 업계 관계자는 "KT가 1.8GHz 인접대역을 받을 경우에 얻을 이익의 규모, 시장 영향 등이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주파수 경매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동통신 3사도 각자 국민 편익ㆍ산업 발전 측면을 내세우고 있긴 하다. KT 측은 "KT가 1.8GHz 인접 주파수를 이용해 광대역 서비스를 제공하면 업계 전반의 광대역 서비스 경쟁이 촉진돼 결국 경쟁사의 이용자에게도 좋을 것"이라며 "투자 경쟁도 유발돼 산업 전체로 혜택이 확산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경쟁사들은 "시장 환경과 경쟁 상황을 고려해 조율해야지, 한 사업자의 이득만 감안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주파수 경매를 둘러싼 과도한 논란과 사업자 경쟁이 통신비에 미칠 영향도 우려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추세를 봤을 때 이동통신비가 올라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동통신사들이 출혈 경쟁을 벌이면 어디선가는 그 부분을 상쇄해야 하는데, 순수히 투자비에서 상쇄할지는 의문"이라며 "결국 이동통신 요금으로 보전할 가능성이 높지만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었던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체코의 경우 지난해 말 LTE 주파수를 경매하면서 할당 대가가 최저가의 약 3배까지 상승하자 이동통신사들의 가입자 요금 전가가 우려된다며 경매를 취소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동통신사 관계자도 "이동통신사들이 과도한 주파수 대가를 지불하게 되면 서비스 고도화 등을 위한 투자 여력이 떨어지게 되고, 요금이 올라가지는 않더라도 전반적으로 가입자 후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계 각국과의 LTE 주파수 조율도 중요한 이슈로 제기된다. 홍인기 경희대 전자정보대학 교수는 "세계 각국이 가장 많이 쓰는 1.8GHz, 2.1GHz LTE 주파수에서 광대역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통신장비ㆍ단말기 수급, 로밍 서비스의 측면에서 유리하다"며 "장기적인 주파수 정책을 세워야 사업자들이 미리 효율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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