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장하성' 드라마

최근 증시에서는 흥미진진한 드라마 한편이 전개되고 있다. 첫 방영일은 지난달 23일.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출범한 ‘장하성펀드’가 그 주인공이다. 장하성펀드는 태광산업그룹의 계열사인 대한화섬을 투자 대상 1호로 선포했다. 지난 4일에는 대한화섬 측에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신청을 했다. 주주 분포 및 주주명단 등을 확인하고 소액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뜻을 알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화섬 측은 주주 입증자료 및 열람 신청의 원인을 밝히기 전까지는 곤란하다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 양측의 싸움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양측이 전면전에 나서자 드라마 시청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대한화섬과 태광산업의 주가가 그사이 각각 100%, 50% 이상씩 급등했고 시장에서는 장하성펀드의 다음 타깃이 될 종목 찾기에 혈안이 된 상태다. 몇몇 개인투자자들은 “장하성펀드에 가입하고 싶다”며 기자에게 문의를 해올 정도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보면 볼수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한다’ ‘장기투자하겠다’ 등의 내용은 올초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에 투자한 사례나, 2003년 소버린이 SK에 투자하면서 벌어졌던 일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장하성펀드 역시 조달한 자금 대부분이 외국자본인데다 소버린의 자문 역할을 맡았던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가 운용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펀드의 최종 목표는 이익 창출일 수밖에 없다. 결국 외국인들의 배만 불려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여기서 나온다. 또 조세 피난처인 아일랜드에 적을 두고 있어 국내에 세금도 내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만 새로울 뿐 예전에 방영된 드라마의 복제판인 셈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종영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1,300억원에 달하는 펀드 자금 중 극히 일부의 투자처만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 장기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 어떤 기업에 투자해 지배구조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해당 기업의 가치를 어느 정도 높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장하성펀드가 예전 드라마를 그대로 ‘재탕’하지 않고 새로운 결말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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