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큰 선정을 베풀었으면 그 덕이 비석으로나마 후대에 전해지는 것일까?적게는 서너개, 많게는 10여개의 송덕비가 세워져 있는곳도 있다.
그러나 옛날은 몰라도 오늘에 와서는 송덕비를 세워 줄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않다. 자작으로 세우자니 염치가 없고 남이 세워주자니 기릴 공덕이 없다. 송덕비는 커녕 끝을 온전히 하기 어려운 자리가 바로 오늘의 높은 자리이다. 애써 오른 높은 자리인데 뜻하지 않은 일, 어처구니 없는 일로 낙마하기가 일쑤이며 몸과 이름을 보전하기 어려운 자리가 바로 높은 자리가 되고 있다.
옛사람은 마땅히 오를 자리에 올라 마땅히 할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송덕비에 남고 지금은 마땅하지 않은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 마땅하지 않은 일을 하기때문에 이름을 더럽히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하는 짓은 예나 지금이 다를바 없으며 송덕비는 자작이나 강요의 산물이자 오히려 실덕의 증거뿐이라고 말해야 옳은가? 옛날 청백리를 크게 칭송한 것은 탐관오리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라고 빗대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개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속속들이 다 알기 어렵다. 아랫사람의 헌신과 능력이 거짓으로 감쌓인 것인지 진심의 짓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사람됨을 속속들이 알수 있다. 높은 자리일수록 뭇사람의 주시하는바가 되기 때문에 허물이 있다면 감출래야 감출 수 없다.
오늘의 높은 자리가 송덕의 대상이 되기보다 끌어내려 패대기치는 대상이 되기 쉬운 까닭이 여기있다. 근자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크게 요구되고 있지만 윗자리에 관한한 아랫사람들은 옛날부터 더 없이 투명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윗사람뿐이다. 물론 그 윗사람도 지난날엔 아랫사람이었으며 윗사람을 투명하게 들여다 보던 사람이기는 하지만 높은 자리에 오르는 순간 들리는 소리는 모두 달콤한 거짓이기 쉽기때문에 어느덧 경계심을 잊고 만다.
발가 벗을 각오, 발가 벗었다는 자각없이 높은 자리에 나아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발가 벗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진 한풍을 견뎌내는 힘도 물론 필요하다. 높은 자리에 나아간 사람이 이름과 몸을 보전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은 그 사람의 화도 되지만 다른 사람의 화도 되는 것이다.
/鄭泰成(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