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buyer)만 있고 셀러(seller)는 없다.'
오는 12일 개장하는 온실가스배출권 거래 시장에 대한 업계의 일반적 전망이다. 배출권을 사려는 업체가 있어도 팔려는 업체는 없으니 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없어 시장 자체가 형성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초기 무상 할당한 배출권이 업계 요구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관련제도도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거래가 이뤄지더라도 가격 급등락에 따른 시장불안 요인이 커 기업들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와 산업은행 등 공적 금융기관들이 초기 시장을 만들고 유지하는 '시장조성자(market maker)'로 참여하지만 제 기능을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와 환경부에 따르면 포스코 등 525개 배출권 할당 대상 기업들은 12일부터 한국거래소(KRX)에서 온실가스배출권 거래를 시작한다. 지난 2일부터 제도는 시행됐지만 본격적인 거래는 이날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배출권 거래일이 4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업들의 불안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처음 시행되는 제도라 일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고 무엇보다 할당량 부족에 따른 수급 불균형으로 초기 거래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7년까지로 예정된 1차 계획기간에 525개 의무할당 대상 업체에 배정한 배출권은 15억9,800만톤이다. 이는 기업들이 요구한 신청량 20억2,100만톤보다 4억톤(21%) 이상 부족하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시장이다. 거래가 부진하면 일부 기업들이 호가를 높게 부르면서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는 시장 불안을 막기 위해 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수출입은행과 함께 시장조성자로 뛰어든다. 기업에 사전 할당 분량을 빼고 남은 예비분 8,900만톤을 통해서다. 하지만 이 물량으로는 시장조성은 물론 시장 안정화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가격인 1만원 이하로 떨어질 경우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것이지만 시장의 예상 균형가격(5,745원)과 괴리가 큰 만큼 실탄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정부가 시장조성자로 끌어들인 산은 등에는 아직 배정된 배출권이 전무하다. 시장조성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 1996년 4개월 만에 문을 닫은 원·엔 직거래 시장의 실패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배출권거래제가 배출권 선진국인 유럽연합(EU)과 달리 '이월 및 차입'이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점도 원활한 배출권 거래를 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탄소배출권 조기감축 실적이 있으면 이를 다음으로 넘기거나 미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 전문가인 노종환 일신회계법인 부회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량을 정해놓고 업계를 몰아붙이고 있다"며 "배출권 거래라는 이슈가 공장 굴뚝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규제하는 규제정책을 희석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