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3월 19일]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하다

윤원철(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

지난해 9월 추경예산이 국회를 통과해 한전과 가스공사는 손실 보조금으로 약 1조원을 지원받았다. 물론 여야는 이들 공기업에 강도 높은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고 앞으로 이러한 보조는 더 이상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추경예산의 당위성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쉽사리 올리지 못하는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한전 손실 지원위해 국세로 메워
그런데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행히 유가는 예상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안정됐지만 환율 불안으로 발전용 연료의 국내 수입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결국 올해도 한전의 손실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분명히 발생할 것이다. 지난해 여야 합의대로 더 이상의 추경예산을 통한 지원은 없다고 했으니 고스란히 한전의 손실로 처리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내년에도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마냥 곳간의 곶감을 빼먹듯 한전의 자본이 잠식되면서 결국 한전을 파산지경으로 내몰 것인가. 이런 시나리오는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서민 경제를 걱정하는 정부의 고충도 이해되지만 지난해 추경예산 지원은 그야말로 악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해결책은 무엇일까. 당연히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고 올려야 할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적정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요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질 수밖에 없다. 바로 지난해의 추경예산을 통한 지원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전기를 사용한 대가로 전기요금은 적게 냈지만 결국 세금이라는 형태로 차액을 지불한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전기를 많이 쓴 소비자가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적게 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이 반드시 세금을 많이 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전기요금이 현실화되지 못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영업손실이 발생하지 않아도 될 한전의 적자가 누적될 경우 자연히 기업가치와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국내외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비용은 결국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전기요금으로,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통해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가격보조보다 소득보전 바람직
셋째, 타 에너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싼 전기요금은 과소비를 조장하고 제한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만든다. 실제로 전기는 에너지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에 비해 가격이 싸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능한 많이 사용할 유인이 발생한다. 결국 불필요한 과소비를 조장하고 전기 생산에 사용하지 않아도 될 에너지원이 낭비될 수 있다. 최근 들어 1인당 전력소비량이 일본을 추월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비현실적인 전기요금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기요금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별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나름대로 소비자를 걱정하면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 이유에서 보았듯이 결국 소비자가 현재도 세금이라는 형태로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전기요금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많이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 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정부가 걱정하는 서민 경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전기요금은 인상하고 보조가 필요한 대상이 있다면 소득을 보전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가격보조보다 소득보조가 시장을 덜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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