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 칼럼] 유럽위기 재연과 아시아의 기회

유럽위기 수년간 지속된다면 美·亞이 경제주도 모색을
한·중·일간 자유무역협정 등 독자적 성장기반도 구축해야


소강상태를 보이던 유럽 재정위기가 그리스 연정실패와 긴축반대시위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에서도 예금인출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에 이태리까지 확산된다면 세계경제는 또다시 위기국면으로 치닫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지난 2008년 경제 대지진의 여진이라고 가볍게 봐넘기면 안 된다. 경제현상은 자연재해와 달리 심리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장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정책을 모아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그리스 위기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게 하는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그동안 그리스 부채를 절반 가까이 탕감해주고 은행자본을 확충하며 유럽안정기금을 확대해왔다. 이러한 방화벽 설치 노력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럽중앙은행(ECB)과 독일ㆍ프랑스ㆍ영국의 중앙은행들이 최종 대부자로서 적기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점을 시장참여자들이 믿게 해야 한다. 정책당국자들의 우유부단과 좌고우면이야말로 위기를 증폭시키는 주범이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긴축정책의 괘도수정을 내걸고 선거에서 이겼다. 취임직후 찾아온 올랑드를 만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긴축소신을 고집해 회담을 결렬시키는 위험을 피하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독일과 프랑스의 균열이 시장심리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도한 긴축의 폐해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1997년 11월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고금리와 재정긴축을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콜금리가 25%를 넘게 되자 국내기업들의 대량흑자도산 우려가 제기됐다. 외환시장의 즉각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고강도의 긴축이 불가피하다는 IMF의 입장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실물경제가 무너지면 외환시장의 안정도 공염불에 그친다는 논리를 내세워서 긴축의 강도와 속도조절을 주장한 바 있다.

과도한 국가부채를 안고 있는 그리스와 재정이 건전했던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축만이 능사는 아니다. 만약에 그리스가 앞으로 수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한다면 아무도 그리스의 국채를 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긴축이 수출과 생산에 걸친 실물경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실수는 피해가야 한다.

지금 세계경제는 위기의 유럽,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미국,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아시아의 3극체제로 이뤄져 있다. 유럽위기가 수년간 지속된다고 보면 미국과 아시아로의 전염을 최소화하고 미국과 아시아가 주도해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즉 쌍발엔진체제를 강화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미국과 아시아는 유럽위기 수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유럽위기가 전파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IMF의 재원확충은 물론이거니와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유럽 국채를 매입하는 데에도 좀 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특히 세계최대 외환을 보유한 중국과 일본의 역할이 기대된다.

아시아는 최근 역내 금융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위기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하는 유용한 차단막이 될 수 있다. 역내금융안정기금인 치앙마이 이니시어티브(CMI)의 규모는 1,200억달러에서 2,400억달러로 두 배로 늘어났고 한일 간의 통화 스와프 규모 역시 130억달러에서 700억달러로 늘어났다. 앞으로 위기예방을 위한 사전경보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 북경에서 한중일 정상들이 연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개시에 합의한 것 역시 아시아가 세계경제 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성장을 지속해나가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는 세 나라 간의 자유무역협정으로 역내교역비중을 늘려 나가면서 세 나라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내수부진을 타개해나가는 것이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아시아의 기회를 확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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