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과 관련한 사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은행의 전반적인 여신 심사 과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담대의 경우 무형의 채권을 담보로 하는 만큼 리스크가 크지만 은행의 대응은 빈틈이 많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KT ENS 협력업체 사건과 씨티은행을 활용한 사기 대출 모두 중소기업이 매출 채권을 허위로 만들어 금융기관을 교묘히 속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워낙 사기 수법이 치밀해 발각이 쉽지 않다는 항변이 있지만 은행들이 주요 점검 사항을 살폈다면 사기 대출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대기업 간판이 아닌 협력업체를 봐야=외담대는 대기업의 어음 결제를 대신하는 기업 간 거래(B2B) 대출로 볼 수 있다. 통상 중소기업인 납품업체는 물품을 구매한 대기업으로부터 바로 물품 구매 대금을 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은 돈줄이 마르기 쉬운데 외담대는 이런 점을 보완해준다. 대기업은 납품업체에 어음 대신 매출채권을 지급하고 중소기업은 은행에 이 채권을 근거로 납품대금을 대출받는다.
대기업은 나중에 대출금을 대신 상환하는 구조로 보면 된다. 문제는 이번 사기 대출에서 보듯 은행들이 협력업체의 물품을 구매한 대기업만 보고 외담대 심사를 허술하게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외부감사 대상인 중앙TNC·아이지일렉콤·다모텍 등의 협력업체는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으로 사실상 신뢰하기 힘든 '한정'을 받았다. 매출 구조도 KT ENS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등 문제가 적지 않았다. 만약 은행들이 협력업체에 초점을 맞춰 심사를 했다면 현장 실사를 요구하는 등 한층 깐깐한 심사를 했을 개연성이 크다.
◇현장 위주 불시 점검해야=매출 채권의 진위부터 따졌다면 사기 대출은 불가능하다. 피해은행들은 매출채권에 대해 일일이 현장에서 조사하는 게 현실에서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대기업 내 관련 부서 및 다른 통로를 통해 거래 여부를 이중, 삼중으로 확인하고 전수조사가 힘들다면 수시로 현장 점검을 통해 이를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은행은 물론 대기업 내 공모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불시 점검이나 인사 제도 등을 통해 이를 미연에 막기 위한 장치도 고안해야 한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출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사기 대출일 수 있는 만큼 현장 점검을 통해 정상 거래에 따른 매출 채권인지 수시로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출 기업의 금융권 동향도 주요 정보=KT ENS 협력업체들이 장기간 사기 대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권 돌려 막기 때문이었다. 대출 상환이 다가오면 기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추가로 받거나 이게 힘들면 다른 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대출받았다. 실제 이들은 우리은행 등에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되자 다른 은행과 저축은행에 손을 내민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회사 간에 정보 교류가 드물고 은행 쪽에서 비빌 언덕(대기업)도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 동향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이라면 더더욱 의심해보고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