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형 금융(Relationship Banking)'이라는 용어가 최근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금융회사가 대출 가부 결정을 할 때 재무비율·신용등급 등 정량적 수치 외에 그간의 거래관계·현장방문·상담 등으로 얻은 정성적 정보를 활용하는 기법을 말한다. 지금까지 금융회사들이 정성적 정보가 중요함을 알지만 이를 수집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부족했다는 각성에서 금융계 이슈로 등장한 것이라 본다. 사실 신용등급이 낮거나 소득 수준이 낮은 서민들은 정량적 수치가 좋지 못해 은행에서 필요한 만큼의 대출을 받기가 불가능하다. 급전이 필요한 경우 부득이 사채나 대부업 등 연 20% 이상의 고금리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정성적 평가다. 정성적 평가는 비록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영세 자영업자의 창업·운영 자금을 지원하는 미소금융도 이전에는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자산·부채·부채비율 등 다양한 정량적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해 정성적 정보를 이용한 관계형 금융 기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대출 기준을 일부 관계형 금융으로 갈 수 있도록 리모델링해 관계형 금융의 걸음마를 뗀 상태다. 하지만 미소금융을 비롯해 서민 금융기관들이 관계형 금융에 뛰어들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대출 의사 결정 과정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시간적 여유나 인력이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관계형 금융에는 필요한 것이 많다. 일단 고객상담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 상담 과정에서 사업 수완이나 노하우, 개인의 의지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차명대출, 제3자 브로커 대출, 유흥비 등 자금용도, 제출 자료의 허위 또는 위조 여부, 타 기관과 동시 중복 대출신청 등등 사기성·부실이 뻔한 대출이 아닌지 골라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따뜻한 가슴(warm heart)'과 '차가운 머리(cool head)'를 가진 전문 상담인력 확보가 선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담은 대출을 전제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심리적 치유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전문 지식과 스킬을 갖춘 전문가가 담당해야 한다. 심문하듯 PC 화면만 보면서 상담하는 것은 진정한 상담이 될 수 없다. 소극적 대출 태도가 되지 않도록 취급자의 면책 범위도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고의·중과실이 없으면 면책이 돼야 한다. 그러자면 금융사의 자산 건전성 분류와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도 다른 일반대출과는 달리 정해져야 한다. 완화된 기준이 없다면 금융회사에서는 이를 적극 취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고의·중과실의 범위도 구체적으로 정해놓아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상담 전문인력 확보, 관계형 금융 취급지침, 평가 기준 마련 등 단기간에 완성될 사안은 아니다. 비록 과제가 어렵고 시간과 노력, 많은 비용이 소요돼도 서민들의 자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최종 목적 달성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들의 사명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