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랑스 최고의 식당이 서울에 문을 열었다. 지금껏 서울에서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식문화의 도입이다. 파리ㆍ도쿄ㆍ홍콩 미식가들의 미각을 마비시킨 천상의 요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훌륭한 식문화를 도입한 주인공인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에는 피카소의 예술적 감각과 열정이,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접근이 묻어 있다.
동서양의 조화와 기존의 형식을 거부한, 그만의 독창적인 요리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각 접시마다 그려진 색채의 조화, 과학과 접목된 다양한 조리 방법의 시도와 이를 통한 새로운 맛의 창조, 프랑스 전통에서 탈피한 혁신적 메뉴의 구성, 본 요리 코스 앞에 제공되는 5종의 전채요리 등 기존 형식을 탈피한 시도가 돋보인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에서 탈피해 적어도 요리를 하나의 문화적 차원으로 격을 높였다. 요리에 굳이 등급을 매기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요리가 바로 오트퀴진(Haute Cuisineㆍ최고급 명품 요리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패션에 명품이 있듯이 요리에도 명품이 있다. 먹기 전에 눈으로 맛을 느낄 수 있고, 식당을 떠나서도 맛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하는, 마치 명곡을 듣고 난 후 오랫동안 그 선율이 귓가에 맴도는 듯한, 그런 요리인 것이다.
김치ㆍ고추장으로 상징되는 한식은 이제 우물 안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흔히들 우리 식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거나 오랜 역사가 있다는 말을 하지만 정작 그것에 대한 관심과 육성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물론 나처럼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은 인정하지만 과연 이것이 요리하는 사람의 노력 부족만 탓할 문제인가를 반문하고 싶다.
한식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토종의 먹거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것을 동시대적 식문화 트렌드에 맞게 발전시키는 등 정부ㆍ업계ㆍ학계의 유기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제는 우리도 명품 한식을 만들어야 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한식의 세계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