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부자 증세를 위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8%로 올리고, 이 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과표)구간을 3억원 초과로 하는 세법 개정을 주도했다. 하지만 기존 세율(6%~35%)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은 지난 1996년 이후 16년째 손대지 않았다. 이로 인해 35%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8,8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범위가 너무 넓어졌고 최고세율(38%)과의 차이가 3%포인트 밖에 안 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물가상승률 등 반영, 상향 조정해야
우리나라 소득세는 납세자의 소득금액에서 각종 소득공제를 차감한 과세표준이 커짐에 따라 6%, 15%, 24%, 35%, 38%의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율 구조를 갖고 있다. 최고세율 38%는 세계적으로 높은 세율을 가진 영국ㆍ프랑스ㆍ일본의 40%보다 2%포인트 낮지만, 미국(35%)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평균 최고세율(35.8%)보다 높다.
우리나라 소득세제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물가상승률을 세금 계산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96~2011년 기간 동안 실질임금상승률은 43.7%(명목임금상승률 108.6%-물가상승률 64.9%)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명목임금상승률 108.6%에 해당하는 높은 과표에 높은 세율을 적용해 중간계층 근로자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겨왔다. 중산층을 육성한다는 정부가 조세정책에서는 다른 태도를 취해온 것이다. 중산층을 육성하려면 명목소득 중 물가상승분 만큼을 과세대상 소득에서 제외하는 것이 원칙이고, 적어도 물가상승률을 과표구간에 반영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근로소득자 가운데 종전 최고세율(35%)를 적용 받은 근로자는 1996년 7,000명(0.1%)에 불과했으나 2001년 2만1,000명(0.3%), 2005년 5만3,000명(0.87%), 2009년 16만명(1.7%)으로 1996년 대비 22.8배 급증했다. 그러자 정부는 근로자의 세부담 경감을 위해 과표 계산시 빼주는 각종 소득공제를 확대, 세금 한 푼 안 내는 과세미달자만 늘렸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7,233달러로 우리나라(2011년 2만3,749달러)의 2배인 미국이 35%의 소득세율을 적용하는 과표구간은 약 4억3,000만원(37만3,650달러) 초과로 우리나라(8,800만원 초과)의 4.9배에 이른다. 양국의 경제수준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소득세법상 35%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은 현행 8,800만원 초과에서 2억1,500만원 초과로 상향 조정돼야 한다.
중산층 복원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
1996년 이후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그리고 세계적 추세를 반영하려면 현행 소득세 과표구간을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 물가상승률(64.9%)만 반영하더라도 세율별 과표구간은 1,600만원 이하 6%, 1,600만원 초과~6,500만원 이하 15%, 6,500만원 초과~1억3,000만원 이하 24%, 1억3,0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33%, 3억원 초과 38%로 조정된다. 왜곡된 과표구간이 어느 정도 시정된 모습이다.
우리나라 소득세 과표구간은 오랫동안 정치권의 무관심과 세수 확보에 급급한 정부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게 왜곡돼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전면적인 상향 조정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소득세 과표구간 상향 조정은 고물가ㆍ전월세난ㆍ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는 근로자에 대한 세금 부과기준을 바로잡고 중산층을 복원할 수 있는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