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3년 대한항공(KAL) 여객기를 격추했던 구 소련 전투기 조종사인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여객기가 강제 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나란히 비행하던 자신의 전투기를 따돌리며 갑자기 속도를 늦춰 정찰기로 확신을 하고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시사 주간지 ‘아르구멘티 이 팍티’(논증과 사실)는 KAL기가 격추된 지 30년째인 1일 특집 기사를 통해 오시포비치의 이 같은 증언을 소개했다.
지난 1983년 9월 1일 뉴욕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경유, 서울로 향하던 KAL 007편 보잉 747 여객기는 사할린 상공에서 구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객 269명이 모두 숨졌다.
당시 보잉 여객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예정 항로를 벗어나 소련 영공으로 들어왔다. 여객기가 캄차카 반도로 접근했을 때 미그(MIG)-23 몇 대가 출격했다. 하지만 여객기는 곧바로 소련 영공에서 벗어났고, 미그기는 기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여객기가 또 다시 사할린 섬으로 접근하자 항로를 500km 벗어나 사할린 상공으로 들어왔을 무렵 수호이(Su)-15와 미그-23기 2대가 다시 출격했다.
먼저 Su-15 조종사인 겐나디 오시포비치에게 ‘침입자를 격추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오시포비치가 공격 준비를 하는 동안 다시 ‘침입자를 강제 착륙시키라’는 2차 명령이 내려왔다.
오시포비치는 “탄환을 거의 다 쓸 만큼 경고 사격을 가하며 착륙 신호를 보냈지만 여객기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객기는 오히려 속도를 줄여 전투기가 추월하도록 했다. 오시포비치는 여객기의 이 같은 기동으로 자신이 상대한 비행기가 정찰기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때 ‘침입자를 파괴하라’는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오시포비치는 여객기를 향해 2발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한 발이 여객기 선미에 다른 한발은 날개에 명중했다.
이에 오시포비치는 ‘목표물이 제거됐다. 공격을 중지한다’고 보고하고 기지로 귀환했다.
그는 “이때까지도 비행기가 여객기란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며 “외국 전투기들을 식별하는 교육을 받았지만 민간 여객기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여객기에 표시등이 있었고 창문도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항공기의 정체를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특히 여객기가 갑자기 속도를 낮춘 기동을 한 것이 그에게 정찰기라는 확신을 줬다고 항변했다.
KAL기 격추 사건의 책임이 전적으로 항로를 벗어난 여객기 조종사에게 있다고 주장하던 구 소련 당국은 오시포비치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중령으로 조기 승진 뒤 서둘러 극동에서 멀리 떨어진 부대로 전출시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