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나선 부채비율문제

지난해 5대그룹은 올해말까지 부채비율을 200%이내로 줄이기로 약속했다. 대기업의 과잉투자와 엄청난 부채규모가 환란의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라는 뼈아픈 교훈에 따른 것이었다. 부채비율 200%는 기업체질 개선의 핵심이자 상징적 목표이기도 하다.그러나 이 목표의 달성이 자칫 무산될지도 모를 위기를 맞고있다. 재계는 당초 약속과는 달리 연내 200%를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자산재평가와 현물출자를 부채감축실적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자산재평가 등은 장부상으로 자금을 움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채감축 실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자유치, 자산매각 및 유상증자 등 현금흐름을 일으켜 부채를 실제로 줄여야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의 줄다리기를 보면서 우선 당국의 준비성 부족을 탓하지않을 수 없다. 자산재평가는 상법상으로 허용되고 있고 기업회계기준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합법적인 사항을 안된다고 하려면 아무리 경제위기극복이란 당당한 명분이 있더라도 절차상의 허점은 없어야한다. 부채비율목표를 설정할 때 미리 자산재평가 등은 안된다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 그러나 당국이 자산재평가는 안된다고 밝힌 것은 올해들어서였다. 뒤늦은 발표가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 정치권까지 개입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경제논리로 합의한 목표가 정치논리로 흔들릴 수도 있는 지경에 이르게까지 됐다. 재계도 별로 떳떳할 것이 없다. 당초 합의할 때 자산재평가문제를 분명히 정리하지 못한데 대한 절반의 책임은 있다. 상법상 허용된다고 주장하지만 현금흐름을 일으켜 부채를 갚아야되는 것은 구조조정의 원칙에도 맞다. 알짜 계열사까지 내다 팔겠다면 부채비율을 못마출 것도 없을 것이다. 5대그룹중 환란이후 알짜 계열사를 자발적으로 매각한 사례는 거의 없다. 금융당국과 계속 실랑이를 벌이면 결국 정치권이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속셈이 작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가 조금 풀리는 기미를 보이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기여서 묘한 여운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란 원래 막힌 곳을 풀어주는 것이다. 재계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부채감축시한을 6개월~1년 연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의식해 구조조정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조직개편이 사실상 무산된 데는 공무원의 반발 못지않게 정치권의 표계산도 한몫했다. 구조조정의 원칙이 무너져 대기업개혁이 물건너 가면 우리 경제의 내일은 없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