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끊임없이 제작되는 '핵영화'

큐브릭 '닥터 스트레인지…'가 최고
60년대 핵경쟁 풍자…지금도 진행형


나는 요즘 시사회에 참석할 때마다 동료 미국인 비평가들로부터 거의 똑같은 말을 얻어 듣곤 한다. "도대체 북한이 어떻게 돌아 가는거냐. 국민들은 굶어 죽는데 핵폭탄을 만드니 김정일이 머리가 돈 게 아니냐." 이런 질문에 난들 뾰족한 대답이 있을 수 없어 그저 웃으며 "그가 머리가 좀 이상한 것만은 분명하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만다. 세상이 핵 걱정을 하게 된 것은 미국의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 직후부터다. 그 뒤 미소간 냉전시대이래 지금까지 핵은 늘 세상을 그의 치명적인 망토로 감싸 안아 왔다. 핵 전쟁에 관한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됐다. 그 중에서도 스탠리 크레이머가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그 날이 오면(On the Beach 1959)'은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핵진이 세계를 덮어 내리며 지구의 인간들이 모두 죽어가는 가운데 자신들의 운명을 맞을 준비를 하는 호주 사람과 호주에 정박했다가 조국인 미국에서 죽음을 맞으려고 출항하는 미 핵잠수함 함장과 수병들의 드라마다. 사려깊고 비감하며 감상적인데다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시드니 루멧이 감독하고 헨리 폰다가 미대통령으로 나오는 '페일 세이프(Fail Safe 1964)'는 실수로 미폭격기에 모스크바에 대한 핵폭격 명령이 떨어진 뒤 미국과 소련정부가 위기를 해소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얘기로 긴장감 가득한 지적인 드라마다. ABC-TV가 1983년에 방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 날 이후'(The Day After)는 캔자스주 로렌스에 핵공격이 가해진 뒤의 참담한 여파를 그렸다. 진저리가 처지도록 절망적인 드라마다. 그러나 모든 핵 영화 중 최고의 것은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반핵 다크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1964). '또는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라는 긴 부제가 붙은 영화는 1960년대 당시 미ㆍ소간 핵경쟁과 두 나라 정부의 자가당착적이요 자만에 빠진 정책과 군대식 사고 방식을 뻔뻔ㆍ대담하고 사나우면서도 배꼽이 빠질 정도로 우습게 야유하고 있다. 피해 망상증에 걸린 미공군장군 잭 D. 리퍼(스털링 헤이든)가 자기 기지를 폐쇄한 후 핵폭탄을 적재한 B-52기들에게 러시아 공격명령을 내리면서 미ㆍ소 정부 간 혼란이 일어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장면이 폭탄 위에 올라탄 B-52기 기장 T.J. 콩소령(슬림 피큰스)의 적진 낙하 장면(사진). 콩소령은 핵탄투하장치가 고장나자 폭탄 꽁무니에 자신이 직접 올라탄 채 카우보이 모자를 내저으며 환호성을 지르면서 소련땅으로 떨어진다. 콩소령의 모습에 폭탄을 사랑(?)하는 김정일의 얼굴을 겹쳐 놓으면 좋은 풍자화가 될 것이다. 이 장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최근 연예주간지 EW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문제에 관해 질문을 받자 "바로 지금 슬림 피큰스가 하늘로부터 폭탄을 타고 내려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다. 영화는 음향 효과 없이 베라 린이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는 '우리 다시 만나리 (We'll Meet Again) '가 흐르는 가운데 버섯 구름이 잇달아 치솟아 오르면서 끝난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진가는 그 내용이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절실하다는데 있다. 한편 최근 폭스가 출시한 DVD '적진 뒤 II: 악의 축(Behind Enemy Lines: Axis of Evil)'은 핵미사일을 파괴하기 위해 북한에 침투한 미 해군특수부대의 활약상을 그렸는데 국적 불명의 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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