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1조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밝히고 있다.
단순히 선언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의 천명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함을 의미한다. 법치와 정치의 근본은 바로 헌법1조에서 비롯되며 민주공화국의 선출된 권력은 선거라는 정치과정을 통해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그 정당성은 주어진 사회적ㆍ정치적 합의의 테두리 내에서 인정받는 것이고 절차적 정당성에 기반한 권력일지라도 과도한 행사는 삼권분립에 의해 적절히 통제된다. 국민이 뽑은 권력이 바로 내각을 구성하는 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제는 정통성을 부여 받은 권력이 내각을 임명하기 때문에 내각은 국민의 공복인 의회의 추인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제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선출에 의한 권력이라 해서 위임된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에서 볼 때 현재의 정부 직제에 존재하지 않는 부처 장관 후보자와 명칭을 내각인선 때 발표한 것은 법치와 의회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부 직제가 집권세력이 지향하는 정책기조를 추동해나가는 인프라고 그러기에 존중돼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경제부총리와 미래창조과학부ㆍ해양수산부 등 신설 직제에 대한 여야 논의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현행 법에 존재하지 않는 직제를 발표하는 것은 야당에 대한 묵시적 폄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집권 측의 권한 남용에 다름 아니며 입법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기각하는 행위다. 정부 직제의 큰 틀을 야당이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해도 명시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는 법치를 벗어난 것이다. 내용과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절차와 과정임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지고지선의 정책이라 해도 입법을 거치지 않으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의 구조이고 원리다.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제도화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다소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라도 절차를 생략한 결과주의와 업적지상주의가 얼마나 많은 폐해를 가져왔는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제도화는 인내와 공론의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정치의 본령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라는 고전적 정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확정한 정부 직제가 "당당하고 설득력 있다"고 언급한 대목에서 여야 협상 여지의 공간은 협소해 보인다. 상생과 협력이 그저 정치적 언술에 머무르고 마는 지점이다. 민주통합당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협조를 당부'한 것은 그래서 다행으로 보였다. 그러나 확정되지 않은 정부 직제안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에서 정치는 설 곳을 잃는다.
정치사회학의 원리를 날카롭게 꿰뚫는 스웨덴의 지성인 샹탈 무페는 '정치적인 것의 귀환(The return of the political)'이란 제목의 저서에서 '정치의 복원'을 강조한다. 적어도 정치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승자독식을 지양해나가는 것이라야 한다. 정치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권위주의로 이어진다.
새삼 역사의 교훈을 떠올리는 것도 진부하다. 퇴임을 며칠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과 효율 강조가 정치 왜소화로 연결된 측면을 부정할 수 없고 양극화 해소와 통합에 걸림돌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난히 통합과 법치를 강조하는 박근혜 당선인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