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무임·전임자 급여문제 대립/“비효율적 경제구조 수술” 뒷전에여야의 노동관계법 재개정 협상이 예상과는 달리 막판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려 완전합의에 실패한채 8일까지 협상이 연장됐다. 현시점에서 실패냐 타결접근이냐는 아직 판단하기 어려우나 협상과정의 문제점은 그대로 노출됐다.
정치권은 그동안 노동법 개정파문에 이어 터진 「한보게이트」에 휘말려 갈수록 커진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노사 양쪽의 입장을 최대한 살려 신한국당이 날치기 처리한 노동법을 3월1일 시행 이전에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여야는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왜 노동법을 개정해야 하는가의 본질에 대한 취지를 망각한채 노동법재개정을 정치흥정물로 퇴락시키고만 결과를 빚었다.
노동법개정의 취지나 당위성이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비효율 고비용구조를 개혁한다는 경제구조적 접근이 일실된채 다가오는 대선을 향한 정치세력간 이해득실로 일관했다는 비판이다.
물론 이같은 경제구조의 개혁을 위해서는 노동문제가 단일 사안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재벌구조의 문제점, 국민의식, 우리만의 독특한 노사문화의 토양등이 체계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노동법접근은 단기적이고 편협한 인기추종과 여론 눈치보기로 일관됐다는 비판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환경노동위 노동관계법 검토위원회를 열어 신한국당이 제시한 정리해고제 도입과 복수노조 허용, 변형근로제 도입,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무노동무임금 문제 등 5개항과 야당이 내놓은 20개 항목을 중심으로 2월27, 28일 막판 절충 작업에 들어갔다.
여야는 그 결과 상급단체 복수노조 허용과 사업장 및 신규하도급을 통한 대체근로제 허용, 유급휴가 상한제(30일)폐지 등 13개항에 쉽게 합의했다.
특히 여야는 국민들의 최대관심사로 부각된 정리해고제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례에 준하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경우 노동위원회 승인없이 노사합의 또는 협의를 거쳐 고용조정(정리해고)을 가능토록 하되 도입시기를 2년간 유예하는 선에서 사실상 합의했다.
변형근로시간제 도입도 2주 단위 48시간 1개월 단위 56시간제를 수용하되 근로시간 상한제를 두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야는 다만 타협점을 찾지못한 파업기간중 급여지급 문제인 무노동 무임금 조항과 노조전임자의 임금지급 금지 문제, 해고근로자 조합원 자격문제, 직권중재가 가능한 필수공익사업 범위 등 4개항에 대해 김수한 국회의장과 이긍규 환경노동위원장이 나서 각당 정책위의장과 정치적 협상을 통해 이날 일괄타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야가 당초 예상을 뒤엎고 노동관계법 재개정을 오는 8일까지 연기한 것은 당내외 사정이 미묘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신한국당의 경우 야당과의 절충안이 정부안에서 크게 후퇴함에 따라 재계의 거센 반발을 산데다 당정개편을 앞두고 사실상 당 지도부의 부재로 노동관계법 처리에 대다수 의원들이 책임지고 나서기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노동관계법 재개정 협상 결과가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노동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데다 너무 시간에 쫓겨 졸속처리한다는 비판이 적지않아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야는 이같은 내부사정으로 노동관계법 재개정에 실패,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없이 지난해 연말 개정된 노동법이 1일부터 발효되는 등 노동정책에 혼선을 초래했을 뿐아니라 당분간 노동관계법을 놓고 공방전이 계속될 전망이다.<황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