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간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뒷전에 있었던 `내그릇`을 이제는 며느리의 후배들과 함께 키우고 싶습니다”
31일 숙명여대 수시 1학기 전형에서 자기추천자 전형으로 인문학부에 합격한 여류작가 이기호(54)씨는 전화 자동응답(ARS)으로 들려온 합격소식이 믿어지지 않는 듯 며느리를 시켜 몇 번이고 다시 합격 여부를 확인했다.
이씨는 지난 1949년 충남 광천에서 태어나 서울 동구여상을 수석으로 입학ㆍ졸업하는 등 탁월한 학업능력을 보여줬다.
졸업 후 한국산업은행에 취직한 김씨는 향학열을 버리지 못해 대입 예비고사를 치러 우수한 성적을 받았으나 결혼과 함께 대학 입학의 꿈을 접었다. 이후 23년간 매사 철두철미하고 엄한 시어머니를 모셔 온 김씨는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수필 습작을 시작했고, 1994년 우연히 참여한 전국 여성 백일장에서 1등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돼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나섰다.
이씨는 같은 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남기고 간 그릇들을 매만지면서 부족한 점이 많아 후회 스럽던 시집생활을 뒤로 하고 이제는 `내 그릇`을 키워가겠다는 내용의 `그릇`이라는 수필로 모 일간지에 `문예사계`에 당선됐다.
그는 또 1995년 고향에서 느꼈던 아름다운 전원의 추억을 소재로 한 `광천 그부장터를 아십니까`라는 수필로 에세이문학 신인상을 수상, 문단에 등단하게 됐으며 향후 그 동안의 작품들을 모아 수필집을 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은행원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이씨의 늦은 대입준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과 대학을 졸업하고 시집을 간 두 딸의 격려가 큰 뒷받침이 됐다. 특히 이씨가 숙명여대에 합격하게 되자 이 대학 생활과학부를 졸업한 며느리와는 `선ㆍ후배`사이가 됐으며, 이 때문에 이씨는 “이젠 며느리한테 잘 보여야겠다”며 즐거운 걱정을 하고 있다.
<최석영기자 sycho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