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뚝 떨어진 24일 오전 서울 강남의 현대자동차 영업지점.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손님이 뜸한 영업점이 더욱 썰렁해 보인다. 이 지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10월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11월 들어 차가 너무 안 팔린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는 특히 "11월 판매조건이 썩 좋은데도 반응이 전혀 없다는 게 더 큰 고민"이라며 "안 팔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달 현대차 쏘나타 판매조건을 보면 기본적으로 30만원을 할인해주고 여기에 차량 생산월이 11월이면 20만원, 9월이면 50만원, 7~8월이면 차값의 5%를 추가로 깎아준다. 이런저런 혜택을 다 받으면 200만원 정도, 차값의 10%가량을 할인받는 셈이다. 현대차는 단종차량의 잔여물량도 10% 이상 깎아준 적이 없다. 11월 조건이 이렇게 파격적인데도 차가 안 팔린다는 얘기다. 현대차 영업점 주변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매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2011년형 모델을 소진하기 위해 E클래스 전체 모델에 대해 36개월 무이자 혜택과 함께 딜러 차원에서도 150만원 정도를 추가 할인해주지만 소비자 반응이 예전같지 않다. 예년에는 판매조건이 유리해지는 11~12월에 고객이 대거 몰리고는 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수입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자동차 고객들은 가격 할인폭이 커지는 12월을 기다렸다가 구매에 나서는데 올해는 이런 특수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자동차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하반기 들어 주요 고객층들의 경제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산층의 경우 전세가 폭등이나 대출금리 인상 등으로 여력이 줄었고 고소득층은 주식가격 하락 등으로 금융자산 가치가 줄었다. 여유롭게 돈을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가 예상되는 내년 1월부터 2,OOO㏄ 이상 차량의 개별소비세가 현행 10%에서 8%로 인하되는 것도 급격한 판매감소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준규 자동차공업협회 산업조사팀 부장은 "자동차는 고가의 소비재인 만큼 경기상황에 상당히 민감하게 움직인다"며 "따라서 최근 자동차 수요 감소가 이후 다른 소비시장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자동차에 이어 수요감소가 두드러진 것은 해외여행. 항공예약률 등 여행사의 체감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11월 항공권 예약의 경우 지난해 4ㆍ4분기와 비교해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항공권 및 자유여행 전문업체인 투어익스프레스의 한 관계자는 "가격이 저렴한 동남아시아 여행 수요는 살아 있지만 일본시장의 경우 절반가까이 줄어들었다"며 "또 미국시장은 9월 이후 감소세가 뚜렷해지면서 이들 지역은 '겨울 성수기'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라고 전했다. 철강과 시멘트 판매도 수요산업이 위축되면서 급격히 줄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ㆍ조선ㆍ자동차 등 주요 산업이 위축되면서 재고가 더욱 늘고 있다"면서 "최근의 판매 부진을 감안하면 내년 1ㆍ4분기까지는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전제품은 올 가을 결혼 예물 수요 등으로 아직 뚜렷한 판매량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소비자들의 구매 대상에서 언제든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는 품목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TV와 냉장고 등 고가 제품 위주로 수요감소가 예상된다"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마케팅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