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정조보단 인간 이산 보여주고 싶었죠"

영화 '역린'서 첫 사극 도전 현빈


3년 만의 복귀작, 첫 사극 도전에서 30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한데 이 남자는 아직도 목이 마르단다. 3년의 공백 탓에 작품 욕심이 나지는 않을까 했는데 "좋은 시나리오를 만날 때까지 조바심 안 내고 기다리겠다"는 여유로운, 팬들로서는 '속터질(?)' 소리도 한다. 군 복무로 몸과 마음 모두 한층 단단해져 돌아온 한 남자 배우 현빈(사진)을 만났다.

"며칠 연속으로 무대인사를 돌았어요. 강행군이었지만 3만석이 넘는 좌석이 모두 매진이었다고 하니 기분 좋게 마무리한 것 같아요. 이제 더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를 봐주시기를 바라야죠."

그의 바람이 이뤄진 걸까. 정유역변(정조 암살을 위해 자객들이 그의 침소에 침투한 사건)을 그린 영화 역린은 지난달 30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 수 300만명을 돌파하며 파죽지세의 흥행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왕 정조보다는 인간 이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을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재규 감독님의 감각적인 영상도 멋졌고."

역린은 현빈의 첫 사극이다. 군입대 직전 말끔한 수트를 입고 "이게 최선입니까"를 외쳐대던 백화점 사장님이 제대 후 곤룡포를 입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중용 구절을 읊조리는 임금으로 돌아온 것. "오로지 시나리오만 보고 결정했어요." 사극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는 그는 "스토리 자체가 흥미로운데다 정조 역할로 제의가 들어왔음에도 다른 캐릭터들이 눈에 들어오는 '희한한 시나리오'였다"고 선택 배경을 밝혔다.

희한한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스크린에 담아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낙마도 했고, 수십 번 활시위를 당기느라 엄지손가락에는 굳은살도 생겼다.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던 '화난 등근육'을 만들기 위해 미국 해병대가 한다는 맨몸운동(TRX)까지 찾아 했다. "처음에는 완벽한 등근육을 지닌 임금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목숨의 위협 속에 남몰래 체력을 키우던 철저하고 처절했던 정조의 인생을 이해하면서 비로소 근육의 의미를 이해했죠."

깡패부터 보디가드, 사장, 그리고 임금까지. 많은 역을 소화했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무궁무진하다. "이중인격자·군인·형사·변호사…경험하고 싶은 배역이 너무 많아요. 20대에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보디가드 역을 했지만 마흔 즈음에 경호원을 하며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을 다시 연기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30대에는 연기에 더 욕심을 낼 것 같아요." 욕심이 조바심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느 기간 안에 어떤 작품의 특정 캐릭터를 해야겠다는 식의 계산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 "'이거 해야겠다'는 건 아직 없다"며 느긋하게 답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뚝심이다.

"제 작품을 보는 분들에게 있어 그 순간만큼은 기분 좋고 편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전 그런 시간을 만드는 사람이고요." 소박한 배우로서의 꿈은 그의 등근육보다 훨씬 다부졌다.

마지막으로 팬들이 궁금해할 등근육의 안부를 전한다. "사라지지는 않았는데 애들이 좀 흐릿해졌어요." 등근육이 없어도 현빈은 현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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