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월가 총독' 래빗 美 SEC위원장회계법인들과 일대격전… '공정한 증시' 선도 역할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세계 금융 대통령이라면, 아서 래빗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위원장은 월가(街)라는 「탐욕의 세계」를 다스리는 총독이다.
그린스펀 의장이 경제흐름에 한발 앞선 정확한 예측과 적절한 대응으로 만인의 찬사속에 군림하고 있는 반면 「공정한 증시」라는 철학을 초지일관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래빗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경제전문가들과 일반 투자자들은 래빗을 적극 지지하고 있지만
증권사, 회계법인, 상장회사 등 월가의 기득권층들은 그를 눈엣 가시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인지 87년부터 장기집권하면서 올해 다시 연임된 그린스펀에 대해 앨 고어 민주당후보는 벌써부터 한번 더 연임시키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93년에 SEC위원장에 임명된 래빗은 내년초 임기가 끝나면 교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래빗은 100% 물러날 것이 확실하고, 민주당의 고어가 당선되더라도 교체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게 월가의 관측이다.
하지만 래빗은 얼마 남지않은 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다 공정한 증시」를 만들기 위해 최근 대형 회계법인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회계업무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회계업무와 컨설팅업무의 겸업을 금지시키기 위한 전쟁이다.
래빗은 회계법인이 상장회사에 컨설팅을 해주면서 동시에 회계감사를 맡을 경우 회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많은 돈을 받고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회사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는게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 스트래티지의 결산 수정 사건. 이 회사는 97년 이후 매출을 과대 계상했다며 그동안의 흑자를 전부 적자로 수정 발표했고 이 때문에 시가총액이 일주일만에 105억달러나 줄어들었다. 문제는 이 회사의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소프트웨어 재판매 등 마이크로 스트래티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
90년대 중반이후 컨설팅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총수입의 51%를 컨설팅에 의존하고 있는 5대 회계법인(PWC, 언스트 앤드 영, 아서 앤더슨, 딜로이트 투시, KPMG)은 래빗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 안되면 래빗의 임기 이후까지만이라도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게 회계법인들의 계산이다.
래빗은 이에 앞서 애널리스트 등에게 먼저 기업소식을 알려주던 월가의 관행이 일반 투자자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를 금지시키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지난 96년에는 나스닥시장의 브로커들이 매매 호가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은 채 큰 이익을 취하던 관행에 메스를 가해 매매상황을 일반 투자자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증시에서 누구나 공정하게 정보를 입수하고 경쟁할 수 있게 만들어 월가의 기득권층인 탐욕스런 상어들로부터 일반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래빗의 철학이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도 한국 증시나 마찬가지로 사기, 횡령, 내부거래 등 온갖 협잡이 난무한다. 돈만을 쫓는 탐욕의 세계의 본질적인 생리다. 다만 다른 점은 래빗총독과 같은 감독기관들이 증시 침체를 우려하거나 증시의 거물이라는 이유 등등을 내세워 법과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증시 침체의 원인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규정을 제대로 지켜나가지 못해온 게 누적된 것도 원인중 하나라면 지나친 얘기일까. 한국 증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아서 래빗과 같은 인물을 키워야 한다. /뉴욕=이세정특파원 BOBLEE@SED.CO.KR입력시간 2000/09/2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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