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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이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됐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법원이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인정한 것이어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고법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9일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사이버 활동의 필요성과 방향성 등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지시했으며 심리전단의 규모를 강화하고 독려한 궁극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면서 "선거 과정에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외면한 채 이를 왜곡한 것이고 동시에 국민의 합리적·정치적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부여한 평등한 자유경쟁 기회를 침해해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며 징역 3년의 실형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원 전 원장은 지난해 9월 1심에서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공직선거법 위반을 유죄로 판단했다. 트위터 계정의 경우 1심에서는 175개만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716개의 트위터 계정을 국정원 직원의 것으로 인정했다. 특히 국정원 직원들이 2012년 8월20일 이후 벌인 선거 관련 찬반 클릭 1,057회와 선거 관련 글·댓글 101회, 선거 관련 트윗·리트윗 13만6,017회 등을 모두 공직선거법상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어느 시점부터가 선거운동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선거국면에 해당하는지 매우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며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확정된 후 선거국면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며 8월20일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를 설명했다. 8월20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된 날로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서 본격적인 대선국면으로 전환됐다고 본 것이다.
이 기간에 올라온 글들에 대해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선거 글 자체를 봐서는 종북세력에 대한 사이버 심리전이라는 명분을 읽어낼 수 없었다"며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한 행위라고 평가돼 공직선거법이 정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심리전단 직원들의 경우 자기들의 행위를 인식한 채 사이버 활동을 한 것이 분명하다"며 "심리전단 직원들의 목적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 등도 선거개입이라는 목적을 갖고 이 같은 활동을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당선 또는 낙선을 위한다는 목적이 미필적으로나마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사이버 활동에 관한 자기의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심리전단 조직을 통해 선거국면에 맞춰 계속 (활동을) 실행할 것을 적극적으로 용인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사이버 광장에 직접 개입해 일반의 국민인 양 사회적 쟁점과 선거 쟁점에 대한 의견을 조직적으로 전파함으로써 국가권력의 개입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다양하게 토론·논쟁했던 국민들은 이제 사이버 공론장의 순수성을 의심할지도 모르게 됐다"며 "(정부 정책에) 동의하는 수많은 국민들은 (자신의 의견이) 단지 국가권력의 일방적 선전으로 치부될 것으로 우려할 수 있게 돼 활발한 정치참여나 표현이 혹여나 위축돼 사이버 공간이 가지는 긍정적 효과가 줄어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한 방어심리전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국정원으로서 이에 대응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있으나 그러한 필요성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이사건 사이버 활동은 본연의 심리전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했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활동이었다고 하나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한 것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원 전 원장과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이,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6월이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