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개성공단은 살려야 한다

남북긴장 완화 기여한 개성공단은 최후 보루
자존심 싸움 그만두고 함께 신뢰의 길 찾아야


세계인들의 눈으로 보면 한국엔 이상한 것이 많다. 금방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형상인데 한국인들은 태평이다. 혹시나 하고 한국으로 급파된 외신 기자들은 여의도의 넘치는 벚꽃 놀이 인파와 봄꽃 나들이로 붐비는 주말 등산객에 의아해한다. 개성공단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휴전 중인 국가 간에, 그것도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가 만나 만들어낸 절묘한 합작품이다. 냉전을 종식시키고 남북 긴장 국면을 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처방약이다. 세계인들은 이 신약의 임상실험을 지켜보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남북 간에 사건과 사고가 겹치면서 이 신약의 효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자연 공단 개발 사업도 지지부진했다. 개발이 시작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체 공단부지 800만평 중 겨우 5% 정도에 기업들이 들어선 상태이다. 현재 남쪽 기업 123개에 북쪽 근로자 5만3,000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비록 처방약의 투여 용량이 적고 실험기간이 짧아서 그렇지 남북 간의 전쟁 위험과 심각한 갈등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개성공단이 2004년 12월 첫 가동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개성공단을 측량할 때부터 사업을 지켜본 필자에겐 아쉬움이 앞선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두 차례 통행이 차단되거나 출입 인원을 통제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전면적으로 장기간 폐쇄되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개성공단에 대해선 남북한 모두가 정치와 민간 경협의 분리라는 명분을 인정했다. 서해안에서 포탄이 오가고 국지전의 위기 국면에도 남쪽의 정치권과 언론까지도 개성공단은 거론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서 이만큼 키워온 남북 합작품의 운명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전 이후 50년이 가까워오던 2000년 8월 남북 간의 화해와 상생의 돌파구로 개성공단 개발을 합의했다. 적대 관계하의 분단된 정치ㆍ사회적 환경에서 탄생한 것이라 남북 양쪽으로부터 냉대와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남쪽에서는 개성공단의 사업자들을 마치 북을 도와주는 종북주의자 정도로 폄하하기도 했다. 북에선 북대로 지지부진한 개성공단을 보며 괜히 군부대를 뒤로 물리고 휴전선 철조망만 걷어낸 게 아니냐고 비판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 경협에 관여하는 기업인들은 비록 통일에 기여한다는 거대한 명분은 아니라도 적어도 사업을 통해 남북 긴장 완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은 갖고 있다. 이웃한 중국과 타이완에서도 정치ㆍ군사적 갈등을 푸는 데에도 민간 경협이 일익을 담당했다. 지금은 양국 간에 투자와 교류가 자유롭지만 이는 불과 최근 10년 내의 일이다. 1958년 중국의 금문도 포격으로 타이완에 440여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고 1995~1996년의 1ㆍ2차 대만해협 미사일 위기, 2002년 미사일 배치 강화로 양안 간 긴장은 지속돼왔다. 그러나 위기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민간 접촉 창구의 꾸준한 노력이 화해와 경제 협력 확대에 주효했다.

10년 전엔 중국과 타이완이 부러워하던 개성공단이 중대 기로에 있다. 이제 막 새 정부가 출범했다. 수인사도 하기 전에 뺨부터 맞은 꼴이다. 지금은 누가 먼저 대화를 제의했느니, 지금 기가 잡히면 5년 내내 끌려다니느니 하는 자존심 싸움은 그만둘 때다.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신뢰도 벽돌 쌓듯 서로가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남북한 서로가 진실해져야 하며 머리를 맞대고 함께 신뢰의 길을 찾아야 한다. 개성공단은 이제 마지막 남은 대화 거리며 접촉 창구다. 남북 화해의 길에 개성공단이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금 공단의 문을 닫으면 남북 관계는 다시 13년 전으로 돌아간다. 부부싸움 끝에 자기들이 산고 끝에 낳은 아이를 내팽개치는 것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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