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경색 예상외 심각… '위기' 선제대응

■ FRB도 연말까지 자금 무제한 방출
"일단 연말고비 넘겨 내년 성장 1.8~2.5% 유도"
리보·콜금리등 급등, 시장 움직임은 정반대로
다우존스 연고점서 10%이하 하락 "조정 돌입"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말까지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은 시중 유동성 경색이 심각해 연내에 금융위기가 닥쳐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연말까지 금융시장 혼란을 막아내면 내년 미국 경제는 침체(recession)를 피해 1.8~2.5%의 완만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FRB의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가운데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연고점에서 10% 이하로 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뉴욕 증시가 완전한 조정국면에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점점 심각한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FRB의 두 차례에 걸친 금리인하(0.75%포인트)와 각국 중앙은행들의 단기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자금시장의 주요 지표들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시장이 사실상 패닉 모드에 빠져들었다”고 평가했고 WSJ는 “연말 자금수요에 금융기관이 제대로 대처할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이런 위기감을 극복하기 위해 FRB와 유럽 중앙은행(ECB)이 일제히 단기 유동성 공급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일부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연말 소비 특수 등으로 인해 현금수요가 폭증하는 데 따른 사전적 대응조치로 해석된다. 일단 연말 고비는 넘고 보자는 심산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고 우려한다. 바클레이스캐피털의 미첼 폰드 금리전략가는 “FRB가 연말까지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현재 금융시장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ECB가 지난주 말 무제한 유동성 공급방침을 밝힌 것도 영국계 HSBC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미리 파악, 미국발 신용경색의 유럽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대응조치로 보인다. HSBC는 26일 산하 2개 구조화 투자회사(SIV)에 350억달러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기자금을 조달, 고수익ㆍ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SIV가 만기 도래하는 자산담보부 기업어음(CP)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따른 구제조치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이날 HSBC가 추가로 손실 처리해야 할 서브프라임 관련 부실자산이 12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혀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뉴욕 연방은행이 이날 연말까지 사실상 무제한 유동성 방출을 선언했지만 시장의 움직임은 정반대로 흘렀다. 금융기관 간 극심한 대출기피 현상으로 지난 9일 이후 하루짜리 콜금리는 기준금리(4.5%)를 연일 넘어서고 있고 국제 금융거래의 기준이 되는 리보(런던 은행 간 거래금리)와 미국 기준금리의 스프레드(금리격차)도 0.55%포인트로 치솟았다. 3개월 만기 리보는 지난주부터 5%를 넘어섰다. 회사채를 기피하고 안전자산인 미 재부부 채권(TB)에 수요가 몰리다 보니 정크본드와 TB와의 스프레드는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리먼브러더스에 따르면 이날 채권 스프레드는 5.70%로 1차 신용위기가 폭발한 8월 중순의 4.49%보다 1%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미 FRB가 8월 신용경색 이후 최장 만기 2주짜리 단기자금을 공급하다 28일부터 6주로 연장한 것도 최근 자금시장의 패닉을 반영한다. 4ㆍ4분기 중 110억달러의 손실처리가 예상돼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돌던 씨티그룹은 국부펀드로부터 75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으나 불길을 잡았다는 평가는 아직 이르다. 씨티는 4월에 1만7,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이날 또다시 전체 직원의 15% 수준인 4만5,000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최근 대규모 손실처리를 발표한 온라인 증권사 이트레이드는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진로가 불투명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을 선언한 지금의 상황은 8월보다 더욱 심각하다”며 “금융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붕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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