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등에 업고 '승승장구'…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 눈앞

[피플 인 이슈] 브라질 대선후보 호우세피
결선 안치르고 1차 투표서 과반 당선 여부 관심속
"선거 경험 없는 정계 신참… 카리스마 없다" 비판
"룰라 후광, 藥이자 그의 영향력에 가리는 毒" 지적도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집권 노동자당(PT)의 대선 후보 딜마 호우세피(Dilma Rousseffㆍ63)의 질주가 무섭다. 지금과 같은 지지율이라면 사상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사회민주당(PSDB)의 조제 세하(Jose Serraㆍ68) 후보를 따돌리고 첫 지지율 역전을 이뤄낸 호우세피 후보는 단 두 달 만에 그 격차를 약 20%포인트 대까지 벌리며 여유로운 승부전을 펼치고 있다. 대선(10월 3일)이 4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여부는 더 이상 관심사에 속하지 않는다. 1차 투표에서 특정 후보의 지지율이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 1, 2위간 결선 투표가 진행되기에 여론의 관심사는 온통 호우세피가 다음달 31일 결선 투표까지 가지 않고 과반의 지지율로 단번에 승리를 거머쥘 지 여부에 쏠려 있다. ◇딜마 호우세피는 누구=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호우세피는 브라질 국민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4수' 만에 대통령 직을 거머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65) 브라질 대통령은 물론 2002년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에게 패한 뒤 내리 2기를 상파울로 주지사로 활동해 온 세하 후보에 비해 거의 무명에 가깝다. 호우세피는 대통령비서실장을 거쳐 장관을 역임했지만 행정가로서 그리 좋은 평은 받지 못했다. 지금까지 선거에 나서본 경험이 전무해 '정계 신참'에 해당한다. 야권 후보가 룰라 전임 정권에서 장관직을 역임하고 국회의원과 상파울로 주지사를 각각 거치며 호평 받아 왔음을 감안할 때 여권의 대통령 감으로 낙점되기엔 다소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서구 언론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룰라 대통령이 금속 노동자 출신으로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빈민층 출신인 것과는 달리 호우세피는 변호사의 딸로 태어나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지닌 엘리트다. 노동당에 가입한 시점도 2001년으로 다소 느린 편. 게다가 호우세피를 직접 지명했던 룰라 대통령이 차기 주자 띄우기에 바빴던 지난해에도 그녀는 한 해의 절반을 임파선 암 치료에 보냈다. 이코노미스트는 "반독재 무장세력에 가담했던 경력도 있지만 여권의 후보로는 노동당 출신인 마리나 실바 후보가 더 어울려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녹색당에서 출마한 실바 의 지지율은 10%를 밑돌며 경쟁권에서 멀어져 있다. 타임지와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서구 언론들은 그녀에 대해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8월 5일 개최된 첫 TV토론에서도 그녀는 한 줄짜리 질문에 30여분간 대답하는 다소 산만한 모습을 연출했다. ◇'룰라의 후계자'가 지지의 근간=빠른 시일 내에 호우세피가 부상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뒤에 룰라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년여 간 브라질을 이끌어 온 룰라는 노동자 출신으로 대다수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얻고 있는 브라질에서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 게다 이 같은 인기는 지난 8년간 경제성장과 빈곤퇴치를 동시에 이뤄내며 절정에 달하고 있다. 브라질 내부의 지지율은 현재 80%에 달하고 있다. 남미 대국 브라질의 첫 좌파 정권 등장에 다소 뜨악한 반응을 보여 온 서구 언론들도 그의 업적 앞에 사실상 찬사로 돌아선 상태다. 타임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한 채 '룰라가 지지하는 그 후보를 찍겠다'는 유권자가 전체의 8%에 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호우세피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가난한 변방지역을 돌면 돌수록 그녀의 인기는 더욱 올라갈 것"이라 평한 이유다. 호우세피 캠프 역시 이 같은 이유로 그녀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길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브라질의 영광', 룰라=서구 언론들은 좌파 출신이지만 실용적인 노선을 걸은 점이 성공의 비결이라 보고 있다. 철저한 신분제를 유지해 온 국가에서 빈곤 퇴치에 나서면서도 기업가 등 부유층에게도 믿음을 얻는데 성공, 이들이 경제 성장에 전력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타임지는 "금융업이 본 궤도에서 이탈하며 자본주의가 그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내던 시점 룰라 는 되레 '기본'을 지키는 정공법 만으로 나라를 빈곤에서 구했다"고 평했다. 브라질은 인구 5위, 경제 규모 8위에 풍부한 천연자원과 넓은 영토를 겸비한 남미 대국이지만 봉건적 신분제에 기반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살인적인 인플레로 전 세계의 위기 때마다 심각한 감염 상태를 드러내 왔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집권이후 '볼사 페밀리아(Bolsa Familia)'라는 빈곤층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200만에 달하는 빈곤 가계에 매달 111달러의 지원금을 지급하며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브라질의 빈곤층은 지난 2003년 전 인구의 28.5%인 4,950만명에서 5년만인 2008년 2,900만명으로 16%까지 줄어들었다. 극빈곤층도 2003년 17%에서 2008년 8.8%로 반 가까이 줄었다. 악명 높았던 불평등구조도 완화됐다.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2001년 이래 계속 감소했고 같은 기간 극빈곤층의 임금이 매년 8% 자란 반면 부유층 임금은 단지 1.5% 늘었다. 가난한 북서부의 평균 임금은 매년 전국 평균을 상회해 지역적 불평등도 감소됐다. 현재 브라질 인구의 52%는 월소득이 1,064레알에서 4,561레알인 '하위 중산층'이다. 2003년 이 비율은 44%였다. 같은 기간 농업 생산도 급증했다. 아마존 밀림을 해한 것이 아니라 세라도 평원의 풍부한 물과 유휴 경작지를 관리할 수 있는 종합 시스템이 가동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브라질은 쇠고기와 닭고기 수출 1위 국가이자 오렌지ㆍ 설탕ㆍ 커피의 생산 및 수출 1위 국가다. 이 역시 브라질 정부가 가축의 사료가 되는 작물의 재배기술을 높이고 병충해를 막는 기술 등을 더한 결과다. 이쯤되니 세하 캠프에서는 "여권 후보가 큰 실수를 해주기를 기다릴 판"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룰라 이후 브라질 어디로 갈까=그러나 룰라의 후계자임을 자청하면 될 뿐인 호우세피의 가장 큰 장애물 역시 룰라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룰라의 후광이 손쉬운 낙승을 약속하는 '약'이기도 하지만 그의 영향력에 가리는 '독'이 된다는 지적이다. 룰라 본인이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일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유엔사무총장 후보설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 정가에서 그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심지어 브라질을 방문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룰라 대통령이 4년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돌아와 8년간 더 집권하기 바란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NYT도 "삼선은 불가능하지만 차 차기에는 얼마든지 출마할 수 있다"며 호우세피를 낙점한 룰라의 선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호 막 빈곤을 벗어난 사회 분위기도 아직 민주화와는 거리가 있다. 브라질 정계의 부정 부패는 그 뿌리가 깊은 수준이고 룰라의 행보 역시 석연치만은 않다는 지적도 늘고 있다. 타임은 대선을 앞둔 연초 룰라를 '단점이 없는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가 개봉돼 전국을 돌며 상영중인 점과 현 정부가 TV 프로그램 내의 정치인 비판을 상당 부분 금지한 점 등을 '도가 넘은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도 첫 TV토론 당일이 브라질의 국기 격인 축구 방영시간과 겹쳐 대도시에서조차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물론 룰라에 대해 "헌법을 고쳐서라도 다시 대통령이 돼 달라"라는 국민적 여론이 높았던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브라질의 영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좀 더 다른 모습의 룰라와 호우세피가 필요할 것이라는 시각 역시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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