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단대책 내놔야 시장회복”/무기명 채권허용·한은특융등 실시를/경제불안요소 해소 외자이탈 막아야30일 증시와 외환시장이 사실상 공황상태에 빠지자 관계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시장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증시 파경을 막기위한 특단의 대책에 대해서는 ▲무기명 채권발행 ▲한국은행 특별융자 ▲연·기금 주식투자펀드 설정 ▲부실채권 정리기금 확대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증권업계 및 학자들은 한은 특융에 대해서는 반대여론이 지배적이다. 지난 89년 12·12 투신권 특융이 결과적으로 주가를 받치지도 못했고 이후 주가하락과 과중한 이자부담으로 인해 투신권이 헤어나기 힘든 부실에 빠져든 선례로 보아 대증요법으로서의 한은특융을 다시 거론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대신 증권업계는 무기명 채권발행을 통해 지하자금을 양성화, 이를 금융시장 안정과 산업구조조정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영규증권업협회장은 『최근 경제위기의 근원을 찾아보면 실명제에 많은 이유가 있다』며 『실명제 완화라는 정치적인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기명채권발행을 허용할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심리가 대폭 가라앉고 유입자금은 금융시장안정과 구조조정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권업계는 이와 관련해 29일 강경식 부총리가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에 앞서 청와대에 들어갔던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즉 재정경제원역시 무기명채권 발행허용을 금융시장안정방안에 포함시켰고 이를 청와대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배제시켰다는 해석이다.
최운렬 한국증권연구원장(서강대교수)역시 『증시수요확대책, 공급축소, 유동성확대 등 증시내적인 대책은 모두 발표됐다』며 『이제 경제대책만으로 증권시장을 회복시키기 어려운 만큼 무기명 채권발행 허용 등 실명제 완화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윤대 고려대 경영대학원 원장은 『무기명채권발행을 허용할 경우 그나마 정착되고 있는 실명제를 무너뜨리고 우리 경제가 죽도 밥도 아닌 상태로 전락한다』며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대신 정부재정으로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대폭 확대, 부실한 대기업과 금융기관을 정리기금으로 회생시키는 방안이 경제안정과 금융시장 회복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기금 투자확대에 대해서도 원론적인 주식투자 확대만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연기금 주식투자펀드 설정 등 실제적인 주식투자 확대책이 요청된다고 윤정용 증권업협회 부회장은 주장했다.
은행의 외환담당자들은 최근의 불안한 환율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불안심리 및 환율상승 기대심리의 제거와 증시의 안정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외국투자가들이 국내증시를 계속 빠져나가는 한 원·달러시장의 수급불균형으로 인한 원화의 평가절하는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 현재와 같은 외환시장마비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이를 회복시키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며 가능한 한 이른 시일내에 시장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H은행 외환담당자는 『현재 외환시장의 대책은 불안심리, 기대심리를 잠재우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적정환율수준에 대한 판단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S은행의 외환담당자도 『지난 며칠간 외환시장은 매도호가가 없이 매수호가만 있는 상태로 이는 시장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라며 『물량공급보다 시장기능 회복에 역점을 둬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외국투자가들이 국내외환시장에서 환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며 『대미환율의 수준을 얼마로 하느냐 보다 시장기능을 어떻게 회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밝혔다.
외국계은행인 C은행 외환담당자는 『중앙은행이 물리적으로 개입한다고 해도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시장상황이 바뀌기는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주식시장의 안정이 환율시장 안정의 최대 관건이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대미달러환율의 상승은 근본적으로 외환시장의 수급불균형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경상수지의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인들의 국내경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가시지 않고 있다』며 『경제가 하강국면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신인도가 하락하고 경제외적인 악재까지 겹쳐 자칫 동남아국가들보다 더 혼란한 상황이 닥칠수도 있다』고 우려했다.<안의식·이형주 기자>
◎증시투매지속… 붕괴위기 직면/환율급등·안정대책 실망 무차별폭락
정부의 미온적인 증시안정대책에 실망한 국내 투자자들의 주식투매와 환율 급등에 따른 외국인들의 투매가 이어지면서 주식시장이 사실상 공황상태에 빠졌다.
주식시장이 연일 속수무책으로 급락하는 것은 ▲최근 주식시장 및 외환,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위기국면을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 정부의 미온적 조치에 대한 실망과 ▲외국인투자가의 주식매도지속 ▲신용융자 반대매물 홍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내년부터 채권시장을 조기 개방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조치는 「초읽기에 들어간 주식시장의 위기」를 너무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실망감만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유발시켰다.
증시가 붕괴위기에 직면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미달러화 대비 원화환율 폭등에 따른 외국인 투자가들의 주식 투매 확산이다.
최근들어 원화환율이 연일 폭등세를 나타냄에 따라 앉아서 막대한 환차손을 입어야 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주식순매도 규모를 확대시키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투자가들은 ▲8월 8백70억원 ▲9월 2천9백5억원 ▲10월29일 현재 7천4백8억원의 주식순매도를 기록, 최근 석달간 1조1천1백83억원의 주식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또 주가 폭락여파로 신용융자 담보부족에 따른 반대매매가 확산일로에 있는 것도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다.
증권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현재 원금이 완전히 바닥난 깡통계좌만 6백60개에 달하며 신용융자 담보 유지비율 밑으로 하락, 깡통계좌 일보직전에 있는 담보부족 계좌수는 1만3천9백12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지금 주식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확산일로에 있는 외국인투자가들의 주식투매물량과 주가폭락 여파로 무더기 반대매매가 벌어지고 있는 신용매물을 받아줄 직접투자자금 유입』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김형기 기자>
◎환시한은개입… “힘겨루기” 양상/널뛰기장세 때늦은 처방 약효의문
외환당국과 외환시장 참가자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30일 하루동안의 환율동향은 「1달러 =1천원」을 향한 환율상승압력과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이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저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 외환시장은 안정아니면 공황이라는 극단의 갈림길에 서있는 셈이다.
이날 환율은 개장 8분만에 상승한도인 달러당 9백84원70전까지 치솟으며 연 사흘째 하루거래를 일찌감치 마감하는듯 했지만 상오11시1분께 당국이 『더이상 시장에 맡겨둘 수 없다』고 본격 개입을 선언하면서 극적으로 반전, 달러당 9백50원까지 폭락했다. 그러나 하오들어 환율은 다시 9백65원으로 상승하는 전형적인 널뛰기 장세를 연출했다.
금융계는 우리 외환시장의 기초가 아직 튼튼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있다. 요즘처럼 달러가 오르면 달러를 내놓는 세력은 완전히 사라지고 자연히 환율은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폭등세를 탄다. 수요공급에 따른 적정 환율은 경제원론에나 나오는 얘기일 뿐이다.
외환시장에서 한국은행은 분명 큰 손이고 환율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 한은이 최근 3일동안 조정기능을 포기한 것은 구조적인 환율상승압력을 이기지 못한 때문이지만 거꾸로 조정기능 포기가 과도한 환율급등을 초래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바로 전날 『당국의 인위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원리에 맡겨두겠다』며 시장경제주의를 강조한 이경식한은총재는 30일 한발짝 물러섰다.
기아사태에 이어 외환시장이 시장경제의 한계를 시험하는 모르모트가 된 순간이다.
이제 관심은 당국의 개입으로 외환시장이 그동안의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3백억달러에 못미치는 외환보유액으로 과연 환율떠받치기가 가능할지, 달러를 움켜쥐고 있는 기업들에 반강제적으로 달러매각을 지시한다고 해서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지, 일반인들의 달러보유를 제한하고 실수요거래에 따르는 외화매입마저 제한한다고 해서 달러보유심리가 가라앉을지 모두 관심거리다.<손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