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8월8일 방콕.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ㆍ필리핀ㆍ싱가포르ㆍ태국 등 다섯 나라가 뭉쳤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즉 ‘아세안’의 출범이다. 발족 당시부터 경제협력을 중시한 아세안은 자주적 성격이 짙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집단안보체인 동남아조약기구(SEATO)에 묶여 실질적인 교류협력이 상대적으로 등한시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자는 인식이 아세안을 만든 배경이다. 기대와 달리 초기 성과는 한마디로 지지부진. 냉전과 베트남 전쟁이 한창인데다 경제규모가 미미했기 때문이다.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쯤으로 여겨지던 아세안에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브루나이ㆍ베트남ㆍ라오스ㆍ미얀마ㆍ캄보디아 등의 가입으로 회원국이 10개로 불어나 명실공히 지역 대표성을 갖추고 역내경제가 성장하면서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협력체(APEC)가 급속히 확산된 이유의 하나로 아세안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와 물타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창설 39주년을 맞은 아세안 10개국의 위상은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인구 5억9,200만명에 역내총생산이 6,820억달러에 이른다. 거대한 소비시장이며 석유와 천연가스ㆍ고무ㆍ주석 등이 풍부한 자원의 보고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선점경쟁이 한창이다. 중국은 지난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바탕으로 인구 20억명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를 2010년까지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뒤늦었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일본은 FTA에 인적자원 이동 자유화까지 포함하는 ‘16개국 경제연대협정(EPA)’ 제안을 내놓을 참이다. 한국은 이달 말 상품무역협정에 최종 서명하고 올해 말까지 투자ㆍ서비스 협정도 마무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