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개의 커피 쿠폰이 있다. A는 10잔을 마셔야 1잔 무료인 쿠폰, B는 12잔 마셔야 1잔이 무료이지만 두 개의 스탬프가 미리 찍혀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질문이다. A를 선택하든 B를 선택하든 공짜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추가로 10잔을 더 구매해야만 하는 같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B쿠폰을 선택한 사람들은 해당 커피숍에 더 자주 방문했다. A를 선택한 사람들은 공짜 커피를 얻는 데 16일이 걸렸지만 B를 선택한 사람들은 13일이면 충분했다. 컬럼비아경영대학원 란 키베츠 교수는 이 커피숍 실험을 통해 ‘목표가 가까이에 있다는 환상’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최종 목표 달성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투지를 불태우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일종의 눈속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연초에 세웠던 ‘올해의 계획’은 까맣게 잊히기 일쑤다. 사람들은 독서부터 회화 연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짐을 한다. 1년은 뭐든 꾸준히만 한다면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래서 1년 후 달라질 내 모습을 상상하며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상상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희망 고문이다. 흡사 보이지도 않는 결승선을 가리키며 ‘거의 다 왔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세우라’는 조언을 듣고도 비현실적 목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하루 이틀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착각, 정확히는 나와의 약속을 어기는 게 하루 이틀로 끝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일 것이다.
기업 역시 ‘올해의 목표’를 세운다. 재탄생의 해, 혁신 원년 등 대단한 슬로건을 걸고 경기 침체에도 성장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그런데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이뤄야 하는 목표는 다소 높게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기업 관계자들은 ‘과한 목표를 세워야 능률이 오른다’는 대답을 내놓곤 한다. 10% 성장을 목표로 삼는 건 10% 성장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도시바의 회계부정 사건은 과한 목표가 주는 폐해의 심각성을 일깨워준다. 도시바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회계연도 기준) 1조 4천 500억원을 과다 계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영진이 하달된 비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년간 체계적으로 회계를 조작해 왔던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환상을 필요로 하는 존재일까? 무엇이든 이룰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들면 포기하게 된다. 현실성 여부와 관계없이 ‘희망’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이제 어떻게 희망을 품게 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