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정문 공개] 금융

금융기관 임원 국적 제한 못해 '불평등'
선물거래소·증권예탁원 상장때 외국인지분 제한
은행 방카슈랑스 영업 직원수 現수준 유지해야
세이프 가드 발동해도 美투자자 자산 몰수 못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기관의 임원 국적을 제한하지 못하지만 미국은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 FTA에서 증권선물거래소(KRX)와 증권예탁원의 상장에 대비해 이들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소유지분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25일 공개된 협정문 및 각종 부속서류에 따르면 양국은 금융서비스 ‘고위경영진과 이사회(13.8조)’ 조항을 통해 외국계 금융기관의 고위경영자나 핵심 직원, 즉 임원진을 특정 국적자로 구성하도록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즉 외국계 금융기관이 이사진의 과반 또는 임원진을 외국인으로 구성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불평등’(?)은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때 우리나라는 임원 국적을 제한하지 않는 데 합의한 반면 미국은 국적 제한이 가능하도록 자국법을 유보한 데 따른 것이다. FTA보다 우선시되는 다자간협상(UR)을 그대로 준용한 것이지만 향후 국내 금융기관이 미국에 진출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말을 목표로 상장을 추진 중인 거래소의 경우 현행법상 정부를 제외한 법인이나 개인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 다만 국내 투자회사나 투자신탁회사는 지분제한을 받지 않으며 외국 거래소와의 제휴가 목적인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외국인도 지분 5% 이상을 보유할 수 있다. 또 이번에 공개된 한미 FTA 협정문에서는 증권 또는 선물시장의 운영은 증권선물거래소만 할 수 있으며 결제업무는 거래소와 예탁원만 수행할 수 있다는 현행법을 인정했다. 아울러 외국계 은행이 국내 은행을 인수할 때 국제적으로 신용도가 있을 때만 10% 이상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은행의 방카슈랑스 영업과 관련해 영업직원의 수, 동일 보험회사 상품의 판매비율 제한 등도 현 수준을 유지하도록 했다. 외환위기 등 긴급한 시기에 자금의 대외거래나 송금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금융 세이프가드’의 발동 기간은 1년 이내로 제한하되 필요할 경우 미국 측과 협의를 거쳐 연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단기 세이프가드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ISD) 대상에서 제외됐고 경상거래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의 절차에 따라 발동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세이프가드 조치가 발동되더라도 한국 정부가 미국 투자가들의 국내 투자 자산을 몰수(confiscatory)할 수 없도록 하고 이중환율제(dual exchange rate) 실시도 금지하기로 했다. 또 외환규제로 인해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국내에 묶인 자산을 운용하는 데 있어 제약을 두지 못하도록 했으며 세이프가드 발동 때에는 이를 즉시 공표하도록 했다. 아울러 증권ㆍ자산운용업계의 관심사안이던 신금융서비스와 국경간 거래도 제한적인 수준에서 개방이 이뤄졌다. 상대국에서는 허용ㆍ거래되고 있으나 자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금융서비스는 ▦금융감독기관 허용 ▦국내법상 허용 ▦금융기관이 현지법인일 경우 ▦건별 인허가제도를 운용할 수 있을 때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도입될 수 있도록 했다. 금융서비스의 국경간 거래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상 허용하고 있는 투자자문서비스는 개방되나 현행법이 허용하지 않는 신용평가 및 조회, 일반 사무관리업, 채권평가업, 펀드평가업 등은 개방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외화표시자산의 해외 운용 위탁만 허용하고 원화표시자산의 해외 운용 위탁은 2년 뒤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또 우리나라의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신용정책 및 환율정책, 예금주ㆍ주주ㆍ금융시스템의 보호를 위한 제도 등 금융건전성 제도를 언제라도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이러한 건전성 제도는 ISD 분쟁해결 절차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양국 금융 관련 협회에 대해 상대국 금융기관을 불리하게 취급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도 눈에 띈다. 이는 미국 보험회사협의회(NAIC) 같은 협회의 경우 우리나라 금융협회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협회들이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상대국 금융기관이 자국에서 활동할 경우 이를 사실상 제한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 중앙은행의 기능이나 통화 관련 등 국가의 고유 기능이나 국민연금제도ㆍ건강보험제도 등도 한미 FTA 금융협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보험회사ㆍ은행ㆍ증권회사 등에 대해 허용된 금융서비스는 금융협정이 적용된다. 아울러 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에 대한 한국 정부의 특별대우는 유지하기로 했다. 가령 산업은행의 경우 ▦산업금융채권의 독점적 발행 권한 및 정부 보증 ▦정부자금에 의한 장기융자 권한 등 기존의 혜택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국책은행도 개방으로 내몰아 미국 자본의 먹잇감으로 삼으려 한다”는 국내 일각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또 한미 FTA 발효 이후에도 국내 금융소비자의 보호, 금융시스템의 안정 등을 위해 필요한 제도는 언제라도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통화 및 환율정책, 예금주ㆍ주주ㆍ금융시스템 보호, 금융범죄 예방 등을 위한 제도는 투자자-분쟁해결 절차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금융연구원의 하준경 박사는 “금융 분야는 협상 직후 알려졌던 내용과 거의 다른 점이 없다”면서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대부분 개방돼 한미 FTA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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