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미국경제가 올해 말 '재정절벽(정부 재정지출 중단이나 감소에 따른 경제충격)을 타개하더라도 2~3년 뒤에는 '통화절벽(monetary cliff)'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화절벽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보고서를 통해 소개한 경제용어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출구전략으로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을 줄일 경우 경제가 타격을 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경기부양의 양 바퀴인 재정지출과 통화공급이 연이어 줄어들어 경제가 비틀거릴 수 있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통화절벽을 걱정해야 할 때가 머지않았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경제위기를 겪는 고비의 순간마다 재정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지탱해왔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FRB가 이를 사들여 돈을 뿌리는 식이다. 하지만 그 사이 미국의 국가부채는 지난 10월 현재 16조2,000억달러(1경7,600조원)라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불어났다. 애초에 미 의회가 내년부터 재정지출을 줄이고 감세혜택을 중단해 세수를 늘리기로 한 것도 막대한 부채를 축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국이 재정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면 직접적인 경제충격만도 6,000억달러에 달해 또 다른 경기침체가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미 정치권에 대한 압력이 거세졌다. 이 때문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민주ㆍ공화 양당이 결국 재정절벽을 피하거나 완화하는 방향으로 대합의를 이뤄낼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절벽을 피한다면 내년에는 미국경제가 매우 좋을 것(very good)"이라고 밝힌 벤 버냉키 FRB 의장의 최근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적어도 내년에는 재정지출과 통화공급이라는 두 바퀴가 힘차게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FRB가 2~3년 뒤에도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11월 현재 FRB의 대차대조표상 자산은 2조8,800억달러로 사상초유의 3조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만큼 많은 유동성을 시중에 풀었다는 의미다. 금융위기 전인 2008년 초만 해도 이 수치는 1조달러에 채 미치지 못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차대조표 자산이 오는 2014년 중반 4조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우선 달러화 가치가 폭락해 기축통화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다. 속으로 곪은 유로화는 당분간 상대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중국 위안화가 급격히 세를 불릴 수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다.
더 큰 고민거리는 돈이 넘쳐 흐르면 물가상승 압력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달러가치 하락과 고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나면 미국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FRB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거나 유동성 공급을 줄이기 시작하면 통화절벽 문제가 본격 대두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