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국민을 모독하지 말라

[목요일 아침에] 국민을 모독하지 말라 김희중 jjkim@sed.co.kr 요즘처럼 말 때문에 분란이 끊이지 않은 적도 없을 듯싶다. 청와대ㆍ정부ㆍ여당ㆍ야당 등 정치권 모두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누가 한마디 하면 그새를 참지 못하고 되받아친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듯싶더니 이제는 신물이 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옥신각신 입씨름을 벌이는 것처럼 유치하기 그지 없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사회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그 의견과 다른 생각을 얘기하며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일상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부터 하는 요즘 세태는 도가 너무 지나치다. 나(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면 잠시 생각해볼 법도 한데 무조건 반격부터 하고 본다. 반박하는 논리도 억지춘향격인 것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반박이라기보다 험담이나 저주에 가깝다. 서로의 감정만 자극할 뿐 문제를 풀려는 진지함이나 지혜는 보이지 않는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 속에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야수의 잔인성이 엿보인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교수까지 막말하는 시대 이런 혼란과 논쟁의 가장 큰 진원지는 정치권, 그중에서도 청와대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한 말씀이 있고 나면 참모들과 정부 인사, 여당의원들의 지원발언이 이어진다. 주워담을 수도 없는 극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막말을 듣게 된 편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더 험하고 큰 소리로 맞받는다. 이제는 교수들까지도 막말을 하는 세상이 됐다. 정부를 건달이라고까지 매도한다. 원로들의 고견도 깔아뭉갠다. 추기경의 곧은 소리에 "살다 보니 별 소리 다 듣겠다"는 응수가 대표적이다. 어른 공경이라는 미풍양속은 이제 어른으로 불리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공격의 대상도 정치권의 범주를 넘어 국민까지 몰아세운다. 무슨 문제가 잘 안 풀리면 국민이 도와주지 않아서 어렵다는 핑계를 댄다. 우리 역사에서 백성이 제대로 대접받은 적이 없었지만 참여정부에서 국민 노릇하기는 정말 어렵다. 대통령이 "국민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서부터 백성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잦아졌다. 해외에 나가서 국민들을 비하하기까지 한다. "한국 국민은 대통령의 모든 권력을 거세해놓고 독재자처럼 팔방미인이 되기를 원한다"며 국민에게 서운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런 말들을 듣다 보면 국민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ㆍ관료 등 위정자들은 이제 제발 더 이상 말로써 분란을 일으키고 국민들을 절망케 하는 '말의 죄'를 짓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말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자 저주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자기 주장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말로 인한 오해는 상대방의 말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기준으로 추측하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오해가 있으면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확인하면 될 일이다. 핏대부터 올리고 보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 의견차이 인정하고 말 아껴야 장단상형(長短相形)이라고 했다. 세상은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 길다고 반드시 유용한 것도 아니고 짧다고 무용한 것도 아니다. 밝음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법이다. 오른쪽과 왼쪽이 함께 있어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한쪽의 수레바퀴만으로는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말을 아껴야 한다. 그럴 때 다툼은 사라지고 세상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법구경은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버리듯,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게 된다. 자신의 불행한 운명은 바로 자신의 입에서부터 시작된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이다'며 말조심을 경계한다. 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높은 분들은 더 이상 말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백성들은 지금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너무 힘들고 괴롭다. 입력시간 : 2005/11/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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