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테러 이어 공판조서 변조의혹·음모론까지 에버랜드 공소장 임의변경, 담배소송 판결 배후설등… 사법불신 사상 최악 수준 “고무줄식 잣대가 불신 원죄 혁신적 방안 실천해야”법원 내부 목소리 높아져
입력 2007.01.29 16:26:51수정
2007.01.29 16:26:51
#장면1.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KT&G를 상대로 한 담배소송에서 피해자측 대리를 맡은 배금자 변호사는 패소 판결을 받은 직후 “석연치 않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배 변호사는 “지난 주만 해도 일부 승소 얘기가 나왔었는데, 1주일새 (이용훈) 대법원장이 특명을 내려 결과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담배소송 선고는 지난 18일 예정돼 있었지만, 법원은 “판결문을 다듬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선고를 1주일 뒤인 25일로 연기한 바 있다.
#장면2. “의혹은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지난 22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사건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공소장을 임의변경하고, 이를 위해 공판조서를 변조했다는 의혹을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자, 서울중앙지법 담당 판사인 조희대 부장판사는 이렇게 해명했다. 조 부장판사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누차 강조했지만, 재판부 신뢰를 훼손해 재판결과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음모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소송 당사자가 판사를 석궁으로 쏜 ‘석궁테러’ 이후 사법불신 풍조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음모론이 횡행해 권위가 통째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담배소송에서 원고측을 대리해 패소한 배금자 변호사는 판결 직후인 지난 26일 일부 기자들과 만나 이용훈 대법원장의 입김으로 재판결과가 번복됐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을 이끌었던 변호사가 법정이 아닌 ‘장외’에서 사법수장 개입 등의 확인되지 않은 설을 제기하며 재판결과를 모독하는 발언을 하기는 이례적이어서 파문이 일 전망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변호사 개인의 성격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사법권위가 그만큼 추락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사법불신 풍조가 사상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법정에서 이뤄지는 단순한 ‘공소장 정리’ 수준의 해프닝성 사건이 의혹으로 크게 불거지면서 신성한 법정 자체가 음모론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에버랜드 사건 재판을 맡고 있는 조희대 부장판사는 최근 공소장 임의변경 의혹이 일부 언론에 본격 제기되면서 해명하는 수모를 겪었다. 재판담당 판사가 관련 사건진행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해명에 나서기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자리에서 조 부장판사는 “(변호사나 검사 등 재판 당사자도 아닌 언론에서) 이렇게 (의혹을) 보도할 수 없다”며 음모론을 간접 시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특히 ‘공소장 변경’이 ‘(법원, 검찰, 삼성 등) 어느 쪽이 유리한 것인지’를 놓고 각종 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더구나 조 부장판사는 오는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교체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공판조서가 변조의혹이 제기된 이후 교체설에 시달리고 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의 사법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재판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용해 각종 배후설, 음모론까지 활개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수임료 탈세 의혹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의혹이 터져 법원의 권위가 크게 훼손된 느낌”이라고 분석했다.
극에 달한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원 내부의 자성은 물론 엄정한 법적용 노력이 강하게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특히 전관예우 관행에 따른 ‘고무줄식 법적용’이 사법신뢰를 무너뜨린 원죄임을 감안할 때, 법원 스스로 이를 타파하려는 혁신적인 방안을 내놓고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