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눈높이 낮춘 '장진표 코믹物'

■ 장진 감독 '거룩한 계보'


장진 감독의 영화는 코미디다. 제아무리 그의 영화에 남파간첩(‘간첩 리철진’), 킬러(‘킬러들의 수다’), 실연당한 남자(‘아는 여자’)가 등장해도 그의 영화는 언제나 코미디였다. 이런 비일상적인 인물의 일상적인 모습을 비틀어 보여주며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이 이른바 ‘장진표 웃음 코드’. 남파간첩이 복잡한 서울 물정에 어쩔 줄 몰라 하거나, 킬러들이 예쁜 여자아나운서가 나오는 뉴스를 보며 환호하는 모습들에서는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듯 그의 영화의 대부분 웃음은 그들의 독특한 주인공들이 체험하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삶에서 나왔다. ‘거룩한 계보’는 이런 점에서 장진의 이전 영화들과는 맥을 달리 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의 전작들의 여타 주인공들과는 일반인들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거대한 인생의 풍파를 겪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어릴 적 친구 사이인 전설적인 칼잡이 조폭 동치성(정재영)과 ‘직장인 조폭’ 주중(정준호). 치성은 보스의 명령을 받고 조직을 위해 살인을 감행한다. 그리고 감옥에 가서 역시 조직의 일로 사형선고를 받은 옛 친구 순탄(류승룡)을 만난다. 하지만 친구와의 재회의 기쁨도 잠시. 치성은 감옥 안에서 조직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과 순탄을 제거하려는 것을 알아낸다. 복수를 위해 치성은 탈옥을 감행하고 조직의 오른팔이 된 주중과 한판 대결을 펼치게 된다. 어릴 적 친구 사이가 어느새 폭력과 복수의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 언뜻 영화 ‘친구’가 떠오른다.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스크린 위의 폭력장면 위에 의리와 우정이라는 누아르의 고전적 메시지를 담았다. 물론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자신만이 가능한 독특한 스타일의 유머를 풀어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영화가 풀어내는 거대한 이야기에 쉽게 묻혀 버린다. 때문에 ‘거룩한 계보’에는 ‘기묘하게 웃긴’ 감독 특유의 독특한 뒷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거룩한 계보’는 장진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다. “대중적으로 편한 영화를 하고 싶었다”던 감독의 의도가 읽힌다. 그런 만큼 그의 전작과 달리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장진 특유의 독특한 느낌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아쉬운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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