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넘어 세계 독자들과 소통할 것"

소설 '퇴마록' 작가 이우혁씨


지난 1990년대 초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자동차부품연구소에서 에어백을 개발하던 연구원이 있었다. 평소 잡학다식하다는 주변의 평가대로 그는 아는 게 많았다. 인터넷이 국내에 널리 퍼지기 전인 1993년 어느 날 PC통신 하이텔에서 그는 괴담 읽기에 빠졌다. 뻔한 스토리에 싫증이 난 그는 내친김에 직접 괴담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 쌓일수록 독자들이 늘었고 1년이 지나자 반응은 뜨거웠다. '퇴마록'이다.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1994년 겨울 퇴마록은 7권이 나왔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소설은 20권(해설서 포함)으로 완간됐으며 현재까지 1,000만부가 팔려나갔다. 지금도 한 달에 1,000권 이상씩 판매되는 스테디셀러다. 10% 인세를 기준으로 보면 10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으니 책 한 권으로 남부럽지 않은 경제적인 이익까지 얻은 드문 사례다. 1997년에는 영화로도 나왔다.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46)의 소설가 데뷔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다. 여기까지만 보면 잘나가던 한 엔지니어의 화려한 작가 등단이 부러움을 살 만하다. "자고 일어나 보니 작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좌절이 많았죠. 1994년 연구소에 사표를 내고 박사과정을 시작하려는데 교수님께서 '퇴마록으로 잘나가는데 왜 학교에 오려느냐' 하시더군요. 결국 불합격됐어요. 학업에 전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이유였죠. 공부라면 자신 있었는데 퇴짜를 맞으니 상심이 컸어요." 괴담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는 고민 끝에 전업작가로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소설을 제대로 쓰기 위해 관련된 서적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는 그는 "초반에는 즉흥적으로 써서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다"며 "관련 지식이 아마추어 수준은 넘어서야 하겠기에 많게는 한 달에 500권까지 책을 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작가 선언을 두고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형인 경원대 부총장을 지낸 이우종 교수를 비롯해 교수가 많은 학자 집안이라 그를 보는 가족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특히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이 심해 이른바 '딴따라'라는 핀잔까지 감수해야 했다. 지금까지 그는 총 5종의 소설(전체 42권)을 완간했다. 퇴마록 이후'왜란 종결자(총 6권)'를 비롯해 '파이로 매니악(총 3권)''치우천왕기(총 9권)' 등 후속작들이 각각 누적판매 100만권을 넘겼다. 전업작가 17년째인 그는 이제 장르문학작가로서 뛰어넘어야 할 과제이자 실현해야 할 꿈 앞에 서 있다. "모든 소설은 인간의 내면과 삶을 다루는 것일 뿐 장르문학ㆍ순수문학을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한국이라는 지역적 성향(localism)을 뛰어넘어 글로벌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해요." 최근 출간한 3부작 신작 소설'바이퍼케이션(해냄 펴냄)'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징검다리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인간의 본성을 파헤쳐가는 작품은 복잡한 사건 충돌이 빠르게 전개돼 마치 미국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어디서 상상력이 나오냐는 우문에 그는 "표현하느냐 못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상상력이 뛰어나다"며 "상상력을 엮어낼 의지와 방법을 찾느냐는 선택일 뿐"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형식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며 "소설로 현실화해낸다면 나의 꿈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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