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발생했던 서울 도곡역 지하철 방화사건은 안전 매뉴얼만 제대로 지켜도 사고 피해를 줄이는 데 커다란 효과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193명을 희생시킨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유사한 방화가 발생했는데도 안전 매뉴얼을 숙지한 역무원과 승객이 합심한 발 빠른 대처로 대형 참사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불은 이날 오전10시51분께 3호선 매봉역을 출발해 도곡역으로 향하던 열차의 네 번째 객차에서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화재 때처럼 사회에 불만을 품은 범인의 방화였다. 때마침 업무차 도곡역으로 가던 역무원 권순중(46)씨의 대처는 모범적이었다. "불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권씨는 승객들에게 119에 신고하고 비상벨을 눌러 기관사에게 화재 발생을 알릴 것을 요청했다. 이후 승객들이 권씨 앞으로 5~6개의 소화기를 건넸고 권씨는 2차, 3차까지 방화를 시도하던 범인을 제압해가면서 진화에 성공했다.
이 사이 비상벨 신고를 받은 기관사는 즉시 열차를 세웠으며 안내방송으로 화재발생칸 앞뒤로 질서 있게 승객들을 탈출시켰다. 대구 지하철 참사 후 열차 내부가 불연·난연소재로 바뀐 덕분에 의자와 바닥 등의 불길이 순식간에 확산되지 않은 것도 참사를 막는 데 한몫했다. 화재발생 후 도곡역 역무원이 불을 완전히 끄는 데 걸린 시간은 9분이었다.
이번 사고가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수습된 최고의 공(功)은 역무원 권씨에게 있다. 권씨는 사고발생 후 우왕좌왕할 수 있는 승객들을 차분히 진정시키고 끝까지 현장에 남아 승객의 탈출을 도왔다. 이런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매뉴얼대로 대응조치를 한 기관사와 도곡역 역무원들, 또 권씨의 지시에 따라 신고와 대피를 한 승객 모두가 '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새롭게 만들어질 국가안전 시스템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모범 케이스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