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기본적인 논리는 공정경쟁의 유지에 있고, 그 개입의 정도는 해당시장이 갖는 공익성에 따라 달라진다. 보험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하여 정부의 엄격한 감독대상이 되는 이유는 보험산업이 공공의 이익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으로부터 돈을 받아 사람의 생사에 관해 약정한 급여의 제공을 약속하거나 우연한 사고로 발생한 손해의 보상을 약속한다. 보험산업이 갖는 공익성은 이런 약속이 갖는 국민경제적 가치에 있다.
보험과 같은 원리로 불특정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농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의 공제기관과 우체국 보험이 취급하는 소위 유사보험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민영생명보험시장의 30% 규모로 성장했다. 수입공제료의 신장률은 60%대를 상회하여 민영생명보험시장의 10%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우체국보험과 농협공제는 수입보험료(공제료)와 자산규모로 보아 민영보험시장의 최상위권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벽ㆍ오지, 저소득층 주민과 조합원에 대한 보험혜택 제공이라는 유사보험 본래 취지를 넘어 민영보험과 동일하게 운영되고 경쟁하는 유사보험시장은 그 성격과 규모를 고려할 때 민영보험시장과 별개의 시장이라도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들을 동일한 시장의 참여자로 간주해야 하며 동일한 게임 규칙아래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유사보험 가입자와 그에 따른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민영보험은 보험업법 및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에 의한 감독상의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는 반면 우체국보험과 공제기관들은 금융감독기구의 감독권이 미치지 못하는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안주하면서 시장참여자간의 공정경쟁의 문제와 소비자보호문제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우체국보험은 정부의 시설과 인력을 활용함으로써 사업비 부문에서 민영보험에 비해 유리할 뿐 아니라 법인세 등 각종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받고 있고, 공제기관들도 조세감면과 예금보험료의 납부면제로 민영보험과의 불공정경쟁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또한 민영보험의 경우 자산건전성 분류 및 대손충당금 적립제도, 자본적정성제도, 적기시정조치 등을 통하여 보험회사의 건전한 경영을 유도하고, 부실화가 크게 진전되기 전에 적절한 경영개선조치를 취하여 보험계약자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유사보험기관들은 겸영하고 있는 신용사업에 대해서만 은행법을 적용하고 있을 뿐, 보험사업부문에는 보험업법 적용을 배제하고 있는 등 감독제도의 미비로 가입자 보호역할이 크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유사보험이 부실화된다면 가입자의 재산상의 손실은 물론 국민의 혈세의 투입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한편 택시, 버스, 화물공제 등의 자동차공제의 경우 조합원만을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대인ㆍ대물배상책임공제를 취급하는 관계로 일반 피해자보호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같은 기관의 또 다른 조사인 `2002년도 보험피해구제 현황분석`에 의하면 민영생명ㆍ손해보험은 26%, 14%씩 각각 감소한 반면 공제 등 유사보험은 24%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사보험에는 전문적인 감독기관이 없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는 유사보험감독의 일원화를 위하여 최소한의 공제감독기준을 삽입하는 보험업법 개정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그러나 지난 5월 공포된 개정 보험업법에는 공제감독기준을 찾아볼 수가 없다. 관련공제업계와 해당부처의 반발로 입법이 무산된 것이다. 아무리 대다수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입법방향일지라도 부처이기주의와 관련업계의 `떼` 앞에서는 되어야 할 것도 안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원돈(대구대학교 경영ㆍ회계ㆍ보험금융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