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흘러가면 1달러당 1,000원도 무너진다」유로화 출범과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 상향조정, 주식시장 활황으로 인한 외자유입등으로 국내 수출 기업들의 가격경쟁력 주요 지표인 원화 환율이 연일 급락하고 있다.
넘쳐나는 달러 공급물량에 반해 국내 기업들의 수입 자제로 달러 수요는 감소하고 있어 외환수급만 놓고보면 머지않아 1달러당 1,000원도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긴급하게 공기업에 대한 외화차입 자제 및 만기도래 외화차입금 조기 상환 방침 등을 밝히면서 환율 하락 속도에 제동을 걸었지만 원화 강세 추세를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다.
수급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외환시장의 속성상 최근의 원화 강세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무역협회가 수출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정환율(수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환율)은 1달러당 1,190~1,280원선. *표 참조
이 정도의 환율 수준을 유지해야 수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국내 수출업계의 공통된 입장이다. 현재와 같이 1달러당 1,150~1,160원선을 오르내리는 환율로는 1달러당 100원(8.5%가량)정도의 마진 축소를 감내해야 한다.
특히 동남아, 중국 등 우리 경제를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후발 국가들의 경우 지난해 전세계를 휩쓴 외환위기 여파로 여전히 높은 수준의 환율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이를 바탕으로 앞다퉈 「가격덤핑」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어려움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환율 변동으로 인한 수출기업의 타격=달러화를 기준으로 수출가격을 결정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에겐 최근 원화환율이 강세를 보이면서 달러가치 하락폭만큼의 환차손을 고스란히 입고 있다.
상당수의 기업들은 이 때문에 수출계약 체결을 결정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으며 노(NO)마진 수출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중고 건설장비를 전문수출하는 한우건설기계는 환차손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로 수출계약을 포기하기 일보직전이다.
이 회사 이창환 이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중남미지역 바이어와 40만달러 규모의 기계 수출 상담을 진행했으나 막상 계약을 체결하려다보니 수익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수준까지 환율이 급락해 있다』며 『이 때문에 계약 체결을 결정하지 못하고 보류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무역협회가 최근 주요 수출기업 152개사를 대상으로 원화강세 영향을 긴급조사한 결과 전체 조사대상 기업의 41%가 현재의 환율 하락으로 기존 수출계약분에 대해 환차손을 입고 있으며 수지를 맞추고 있는 곳은 불과 20%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10개사중 4개사가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차손 부담으로 이미 체결된 수출 계약을 취소한 사례도 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이 최고의 덕목인 수출전선에서 우리 기업들이 더 이상 출혈 수출은 못하겠다고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환율 강세에도 수출 단가를 인상시킬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는 곳은 18%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환율 강세로 가격경쟁력은 약화됐는데 국제 수요 침체와 주요 수요선의 가격결정력 강화로 전체의 82%에 달하는 기업들이 현재의 수출가격을 감내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엔화강세가 숨통=그나마 아직까지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 엔화환율이 원화와 동반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수출품목의 40%가량은 일본제품과 경쟁관계에 있어 원화 및 엔화가치의 변화는 곧바로 제품의 수출 경쟁력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대우경제연구소는 「엔화환율에 따른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일본 엔화 대비 원화가치의 비율이 우리나라의 수출실적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3~84년과 86~88년 우리나라의 수출물량이 큰 폭으로 증가할 당시 일본 엔화 대비 원화가치가 크게 벌어졌었으며 89~91년 이 비율이 줄어들면서 수출물량도 감소했다.
무역협회 조승제(趙昇濟)이사는 이와 관련,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일본 엔화가치와 원화가치는 지난해 내내 10대1이상을 유지했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무역수지 흑자 399억달러를 달성할 수 있었다』며 『현재와 같은 환율수준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채 양국 화폐가 이 같은 비율만 유지해 준다면 수출 주력품목들은 커다란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한때 14대1 수준으로 벌어졌던 일본엔화 대비 원화가치는 현재까지 10대1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수출 주력품목의 대(對)일본제품 경쟁력이 건재하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국내 수출 주력 품목들의 경우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 의존도가 매우 높다』며 『양국 화폐의 비율이 현재의 수준을 유지한다해도 환율 하락이 좀더 가속화되면 위기를 맞게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아직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지만 엔화강세와 무관하게 원화강세가 좀더 이어진다면 수출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주력품목들의 채산성 마지노선이 위협당한다는 이야기다.
◇수출 주력품목들의 현황=국내 주력 수출 품목인 조선,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가전, 자동차산업은 환율강세로 5~10%가량의 수출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아직은 견딜만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은 최근 환율하락에 가장 꿋꿋하게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우중공업 한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계의 가격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는 한일 양국의 환율격차』라며 『원화환율 강세로 수출 채산성이 다소 줄어들고 있으나 동시에 일본 엔화도 강세를 나타내고 있어 해외 수주에 타격을 받지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선산업이 수주에서 통관까지 평균 2년이상 걸린다는 특성을 활용, 채산성 보전을 위해 착수금을 많이 받아내는 톱헤비(TOP-HEAVY)방식을 적극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반도체는 세계적인 수급구조에 수출가격 및 수출물량이 크게 의존하는 특성상 최근의 환율 변화에 다소 둔감하며 가전 분야 역시 직접적인 수출가격 인상은 불가능하지만 신제품 개발과 고부가가치제품 개발 등으로 간접적인 수출가격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자동차는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환차손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1·4분기 수출 물량이 대부분 1달러당 1,300~1,350원에 계약된 것이어서 환차손에 따른 10%정도의 채산성 악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반면 세계적인 공급과잉 현상과 동남아 등 경쟁국의 「덤핑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석유화학, 철강업계는 최근의 환율 강세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형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