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60년대 같았던 우간다 농촌 변화·발전하는 모습에 짜릿한 성취감"

우간다 농업 현대화 돕는 66세 '실무자' 고영곤 KOICA 전문가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은퇴 후 아프리카행 선택
단순지원 대신 자립에 우선… 한국 원조에 현지 호감도 높아


"직장 은퇴 후 자신이 '용도폐기'됐다고 느낀다면 용기를 갖고 떠나세요. 도움을 갈망하는 국가에서 국내 은퇴자들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고영곤(66·사진) 농업전문가의 목소리에는 의욕이 넘쳤다. 칠순을 바라보는 미수(美壽). 국내에서 기껏 조언자 역할이나 후선에서 노인 취급을 받을 나이지만 우간다 현지에서는 KOICA의 다양한 농업 현대화 원조사업(ODA)을 기획·시행하는 핵심 실무자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원조에 호감을 갖는 현지주민과 정부 관계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우리나라 1960년대 수준의 우간다 농촌이 변화하는 모습에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 전문가가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밟은 것은 지난 2012년 3월. 그는 아프리카 조사연구팀에 참여해보자는 서울대 농대 동문의 권유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짐을 쌌다. 농협중앙회 이사와 민간 농업연구소인 GS&J 농정전략연구소장, 농협대 총장까지 지낸 그의 화려한 경력들을 뒤로 한 채 미련 없이 떠났다. "인생 2막 같은 거창한 말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호기심만 있었지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아내도 한사코 말렸지만 역마살을 이겨낼 수 없더군요."

우간다는 그가 상상한 아프리카 모습을 벗어난 나라였다. 해발 1,200m 고원지대에 위치한 덕에 낮 최고기온이 28~30도로 요즘 서울 한낮 기온보다 낮다. 종족·국가 간 충돌 위협은 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온순했다. 농촌 출신인 그는 일종의 향수와 포근함마저 느꼈다.

그는 "기껏 1㏊ 정도 경작하는 영세 소농들이 많아 과거 우리 농촌의 모습을 떠올리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며 "주로 기업농 중심인 서구 선진국들이 요구조건을 까다롭게 제시하며 원조하는 반면 KOICA는 그들을 이해하며 접근해 현지인들이 더 호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우간다에는 KOICA가 2010년 말 사무소를 세우고 2011년 말에야 한국대사관이 재개설됐다. 30년 이상된 서방 원조국에 비해 원조 경험과 규모는 초라하다. 하지만 우간다가 1960년대 자신들과 소득 수준이 비슷했던 한국의 초고속 발전 경험과 노하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고 전문가의 설명이다.

KOICA 원조로 2년 이상 추진한 우간다 농업지도자연수원(NFLC)이 우리 군(郡)에 해당하는 음피지 디스트릭트에 세워져 이달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우간다 동북부 소로피 지역 과일 주산지에 가공공장을 짓기 위해 터를 닦고 있으며 공장설립 입찰도 오는 8월에 예정돼 있다. 같은달 한국 우량젓소 정액(1,000두 분량)으로 인공수정 시범과 낙농교육도 하기로 했다.

고 전문가는 "현지인들이 오랫동안 원조만 받은 타성 탓에 시설을 먼저 지어주기만을 바라지만 우리는 시설완공 후 자립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치는 데 더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일 가공공장에서 만들어질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미리 알아보기 위한 시제품 테스트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현지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많고 지나친 원조 요구에 애를 먹기도 했다"며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설득·양보해 그들이 원하는 시설을 지어주고 꼭 필요한 농민 의식교육 사업도 벌였다"고 말했다.

고 전문가에게 우간다 생활은 큰 불편함이 없지만 건강은 항상 신경 쓰인다. 가족과 떨어져 있고 현지 의료시설이 낙후된 탓이다. 지난해와 올해 초 대상포진 등을 앓아 한국에서 치료 받고 복귀하기도 했다. 바쁜 일정을 감안해 자신만의 건강법으로 찾은 것이 하루 만보걷기다. 일하면서 걷고 퇴근 후에 남은 6,000~7,000보를 채우고 하루를 마감한다.

그는 "솔직히 아플 때 잠깐 이곳에 온 것을 후회도 했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은퇴 후에도 20여년간 건강한데 인생까지 은퇴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며 "지구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경험과 능력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올 12월 초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그는 "우선 여행하며 쉬고 체력도 기르고 싶다"며 "앞으로도 농업 관련 연구나 일을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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