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비공개 공청회

모임의 명칭은 「가격경쟁방식에 관한 정책토론회」. 이렇게 표현하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내용인 즉, 「주파수 경매제 도입을 위한 비공개 공청회」였다. 모임은 정통부가 주도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거들었다. 한국통신 등 유선계 4사와 이동전화 5사가 참여했다. 통신업계 「마이너 리거」들과 비(非) 통신업체들은 이런 모임이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말 바꾸면, 「통신 패밀리의 사청회(私聽會)」였던 셈.이에 앞서 정통부는 주파수경매제 도입을 지난 6일 입법예고했다. 따라서 이날의 모임은 제도 실시 여부를 묻는 자리는 아니었다. 정책 방향을 확고히 정해 놓고 통신업체들을 불러 쐐기를 박는 설명회의 성격이 강했다. 도대체 주파수경매제가 뭐길래 그랬을까? 주파수는 국토나 물처럼 공공재다. 이를 사유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돈 많이 써낸 자에게 파는 것이 바로 경매제다. 「전파를 민간에 판다」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다. 공공재를 매각하는 선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정통부가 경매제를 선택한 동기는 그 특유의 투명성 때문이다. 주파수는 무선통신사업권과 직결된다. 사업권을 내주고 전파를 안주면 말짱 헛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통신사업자를 선정할 때 점수제 실력평가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심사기준이 편파적」 「심사가 주관적」 「특정 기업이 내정」 등 숱한 잡음을 낳았다. 제2이통도, CATV도, PCS도 그랬다. 반면, 사업자를 돈으로 결정하면 과정의 의혹은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행정당국으로선 그보다 속편한 방법이 없다. 정통부는 PCS 때 차관·실장·국장이 줄줄이 옥살이하는 수모를 맛봤다. 경매제로 바꾸면 그같은 뒷탈도 없다. 문제는 새 제도를 도입하는 정통부의 태도다. 경매제는 한번 해보고, 아니면 그만인 「실험」이어선 안된다. 철저한 검증이 당연하다. 과거의 실력평가제는 산업 육성, 경쟁력 강화가 배경 논리였다. 반면, 경매제가 추구하는 가치는 과정의 투명성이다. 실력평가제가 「목적」에 힘을 뒀다면, 경매제는 「청소」를 깨끗이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정통부가 경매제를 도입하겠다면 경쟁력 강화 논리는 실종되는게 아닌지, 양자를 조화시키는 대안은 무엇인지 깊이 연구해야 마땅하다. 또 경매제에 내재한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정통부는 설명해야 한다. 주파수경매제는 차세대 이동통신 IMT-2000 사업권이 첫 적용대상이다. 어느 전문가는 IMT-2000 사업권 대가는 한 회사당 최소 1조(兆)원이라고 예상한다. 민간의 사업권 확보 코스트가 높으면 비싼 요금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 실력없고 돈많은 기업이 주파수만 선취할 우려도 있다. 황금 같은 한국시장을 겨냥, 외국기업이 사업권을 따갈 수도 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재벌정책과의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 기존 통신업체 외에 통신사업자들을 더 뽑을 때 초래될 중복, 과잉투자의 문제도 있다. 주파수경매제 도입에 따라 걸러져야 할 문제는 이밖에도 허다하다. 요는, 논의의 완전한 개방이다. 입법예고 했으면 떳떳하게 진짜 공청회를 하면 된다. 의견수렴하려면 마이너 리거와 非통신업체들도 참여시킬 일이다. 쫓기듯이 경매제를 도입한다면 그 효과는 행정 편의와 3조원 이상의 경매 수입 밖에는 없다. 李在權(산업부 차장)JAYLEE@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