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간 한국 민간·상업건축의 발전과정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우리나라에서 민간·상업건축의 활성화 된 것은 70년대 이후. 경제개발로 기업이나 개인의 자본이 일정수준에 이르면서 민간건축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기술도 자본도 부족한 탓에 명맥만을 이었다.
해방이전 일제강점기에도 상업건축활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종로 화신백화점(1937)이 민족자본에 의해 세워진 근대건축물의 대표적인 예. 당시로서는 고층에 속하는 7층짜리 건물로 종로사거리의 각을 이용한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였다.
해방후 20여년간은 눈에 띄는 민간·상업건축물은 없다. 6.25로 산업기반을 없어진 상태에서 건축활동은 차라리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69년에 비로소 한국 건축사의 큰 획을 그은 민간건축물이 탄생했다. 바로 삼일빌딩이다. 김중업씨가 설계한 이 건물은 철골조에 검은 색조의 유리를 사용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건물양식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건물은 10여년간 서울시내 최고층 건물로 랜드마크의 역할을 했다.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은행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서울 도심은 조금씩 고층빌딩들로 채워졌다. 조흥은행·외환은행·상업은행 본점과 증권거래소가 이 시기에 탄생한 대표적 건축물. 특히 산업은행본점 건물은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으로 사무공간의 기능을 극대화시켜 경제성장과 기술진보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80년대는 민간건축의 도약기. 엄청난 자본을 축적한 재벌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고층의 사옥을 세웠다. 현대 계동 사옥(84년)을 비롯해 용산 국제빌딩(84년), 63빌딩(85년), LG트윈타워(87) 등이 잇따라 건립된 것.
90년대는 다양성의 시대로 표현된다. 여가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기업·개인 차원에서 다양한 문화적 시험을 시도하게 된다. 사설미술관들이 잇따라 건립됐고 골프장·스키장·체육관 등 레저·스포츠시설에도 건축의 관심이 미치기 시작했다.
국민생명미래원(97)·홍천팜파스휴게소(95)·용문산청소년수련원(96)·오크밸리리조트(98)·양산CC(99) 등 서울경제신문과 건설교통부가 주최한 역대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작들은 이같은 시대 변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90년대 건축의 또다른 특징은 병원건축물. 분당차병원, 영동제일병원, 일산병원 등이 단순한 기능적 관점을 뛰어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게 된다.
90년대 중반이후 등장한 인텔리전트빌딩은 건축과 첨단기술을 접목시켰다.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시작된 이 바람은 95년 포스코센터 완공을 계기로 대형 빌딩 건축의 보편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결국 한국의 민간건축은 경제성장과 사회의 성숙도와 궤를 같이 하면서와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정두환기자DH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