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됐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색다른 유럽영화 2편이 4월초 개봉된다. 충격적인 강간씬과 모니카 벨루치ㆍ뱅상 카셀 커플의 파격적인 연기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서 상영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가스파 노에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원제 Irreversible)과 2000년 베를린영화제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의 긴장감과 실화라는데서 오는 사실감으로 감동과 울림을 준 폴커 슐뢴도르프감독의 `레전트 오브 리타`(원제 The Legends of Rita)가 그것이다. 특히 `돌이킬 수 없는`은 소화기로 얼굴을 내리찍는 살인적인 장면과 9분간의 롱테이크로 찍은 강간 씬등이 삭제없이 무삭제로 18세이상 관람가의 등급을 받고 극장에 내걸수 있게 돼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우선 4일 개봉되는 `돌이킬 수 없는`은 행복한 연인들의 일상이 한 순간에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역순으로 담았다. 채찍이 난무하고 끈적한 신음소리와 온갖 변태성욕자들의 몸부림이 포르노를 방불케하고 모니카 벨루치가 옷이 다 찢겨진 채로 거친 콘크리트 바닥에서 끔찍하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 그리고 강간범에 대한 복수심으로 광포해지는 벵상 카셀의 연기가 영화의 어떠한 장면보다 더 잔인하고 공포스러워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라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객석의 불이 켜져도 영상의 이미지가 뇌리에 가득 남아 시간이 정지된 듯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불편함을 갖는다. 임산부나 심약한 사람은 한번 더 생각하고 선택하라는 말을 권하고 싶다.
이 영화가 갖는 힘은 너무나도 사실적인 영상이다. 세상 도처에는 살인이나 강간 같은 강력범죄가 일어나고 그 피해자들의 일생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다. 그 현실을 매우 정직하게 재현하고 있다. 화면들은 당혹스럽고 혐오스럽지만 이면성을 갖는 관객의 관음증을 드러내 보이는데 성공한다. 상영초반 영상은 거북하고 불편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져 상영끝까지 앉아있게 한다.
클럽 `렉텀`앞. 화면을 어지럽히며 싸이렌이 울린다. 한 남자는 들 것에 실려나오고, 한 남자는 손목에 수갑이 채인 채 경찰을 따라나선다. 그들은 알렉스(모니카 벨루치)와 옛 연인 피에르(알베르 듀 퐁텔). 이어 장면이 바뀌면 알렉스의 강간범 테니아(죠 프레스티아)를 찾아 파리 밤거리를 미친 듯 돌아다니는 두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강간당한 알렉스의 아픔보다 몇 배 더 잔인한 복수가 시작된다.
영화는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하보도에서 강간당하는 알렉스를 비춘다. 파티장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 마르쿠스(뱅상 카셀)와 다툰후 혼자서 지하보도를 건너다 일을 당한 것. 그후 카메라는 마르쿠스와 알렉스의 침실로 들어가 가장 행복했던 한때를 비추며 그들을 가능한 한 현재의 불행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한편 2일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단관개봉하는 영화`레전드 오브 리타`는 `당시 현실 그대로`라는 엔딩 크레디트의 자막처럼 서독의 적군파 테러리스트 잉게 비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이 `양철북`에서 보여줬던 예의 날카로움과 강렬함을 여전히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70년대 분단된 독일. 리타(비비아나 베글라우)는 애인 앤디의 영향으로 서독에서 적군파로 활동한다. 은행강도에 폭탄테러, 납치 인질극 등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거칠 것이 없던 리타는 동료들과 함께 감옥에 갖힌 앤디를 구하던 중 교도관과변호사를 살해하고 동독의 비밀요원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피신한다.
파리에서 일행은 점점 나태해지고 리타는 앤디의 사랑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리타는 자신의 신분을 알아차린 현지 경찰을 총으로 죽이게되고 동독 비밀경찰은 리타에게 동독 내에서 다른 이름과 신분으로 살아갈 것을 제안한다.
제안을 받아들여 염색공장에서 일하는 `수잔나`로 변신한 리타. 헤어스타일도바꾸고 새로 만든 과거도 암기하며 새 인생을 살아가던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과 반대로 서독을 동경해하는 동료 타탸나(나쟈 울)를 만난다.
어느새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영원할 것 같던 독일의 분단이 해소되자 서독측은 동독측이 숨겨준 테러리스트들을 넘겨줄 것을 요구한다. 이젠 동ㆍ서독어디에도 리타가 머물 곳은 없게 된다. 주연여배우 비비아나 베글라우와 나쟈 울은 이 영화로 2000년 베를린영화제에서여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제목중 `레전드`는 독일 경찰의 비밀용어로 신분조작을 뜻하는 말.
<박연우기자 yw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