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31층 최고층을 자랑하는 카나디아타워 27층 회의장. 건물 밖은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여름으로 들어선 날씨 탓에 40도에 육박하는 동남아시아 특유의 후텁지근함이 느껴졌다. 오전 10시 키 촌 캄보디아 경제부총리가 증시 개장을 알리는 황금색 종을 치자 대형 회의장에는 날씨보다 더 뜨거운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킬링필드’의 아픔을 딛고 경제발전에 나서고 있는 캄보디아의 자본시장이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캄보디아 증권거래소는 한국거래소가 지분 45%를 투자해 한국형 증시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양국이 증시 개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지 6년만에 맺은 결실이다. 동남아시아에서 국내 증시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은 베트남과 라오스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한국거래소와 캄보디아 정부가 합작한 캄보디아증권거래소(CSX)가 이날 개장행사를 갖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특히 캄보디아의 제1호 상장사인 프놈펜수도공사(PPWSA)는 한국의 동양증권이 기업공개(IPO) 주관사를 맡아 국내 증권시스템과 투자은행(IB)이 동시에 진출하는 첫 쾌거를 이뤘다. 동양증권은 연내 캄보디아텔레콤과 캄보디아전력공사 등을 잇따라 상장시킬 계획이다.
이날 처음으로 상장된 PPWSA는 개인들의 매수세가 몰리면서 공모가 6,300리엘(1달러=4,000리엘)보다 무려 47%나 상승한 9,300리엘에 첫 거래를 마쳤다. 캄보디아의 하루 상ㆍ하한 제한폭은 5%다. 거래량은 87만주, 거래금액은 23억원을 기록했다.
캄보디아 증권거래소의 개장을 진두 지휘한 민경훈 한국거래소 부이사장은 “비록 상장사 한 곳으로 개장했지만 첫날부터 거래가 좋았고 시스템도 안정적이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캄보디아가 자본시장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현지 정치ㆍ경제계 주요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동영상을 통해 증시 개설을 축하했고 키 촌 경제부총리와 현지 경제 관련 인사 300명이 행사에 참석했다. 우리 측에서는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 유재훈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우주하 코스콤 사장, 유준열 동양증권 사장 등이 참석했다.
훈센 총리는 축사를 통해 “오늘은 캄보디아 경제의 역사적인 날”이라며 “증권시장을 통해 국영기업과 민간기업들이 자본을 확충해 새롭게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그동안 한국형 증시시스템을 개발해 제공하는 등 CXS에 100억원 가량의 현물과 자금을 투입했다. 대신 CSX 이사회 7명 가운데 3명을 확보해 앞으로 캄보디아 증권시장을 공동 운영한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초에 문을 연 라오스 증권거래소의 지분도 49% 확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베트남과 라오스를 포함해 인도차이나 3개국에 한국형 증권시스템을 보급하게 됐다. 한국거래소는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와 필리핀ㆍ태국을 비롯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의 증시 현대화 사업을 수주했고 아제르바이잔과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아시아권에서 북한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증시가 없는 미얀마 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 현재 내부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이날 개장식에서 “지난 56년간의 시장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캄보디아 증권시장이 인도차이나의 중심시장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의 먹거리산업이 될 수 있는 금융 분야의 수출 첨병으로 증시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캄보디아 증시 개장을 기념해 동아대 의료진 34명과 함께 현지에서 의료봉사활동을 벌이는 한편 병원 구급차를 기증하는 행사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