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한 이른바 「황혼이혼」을 불허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중학교 교사 출신인 A할머니(76)는 지난 46년 중매로 만난 남편(84)과 결혼한 뒤 슬하에 4남매를 뒀다. 그러나 남편은 상당한 돈을 벌면서도 결혼 초부터 쌀값 등 최소한의 생활비만 대줬고 욕설과 폭행도 잦아 할머니를 고통스럽게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의처증이 생겨 말도 안되는 불륜을 의심하는가 하면 치매증세까지 보였다.
참다 못한 할머니는 97년 5,000만여원을 들고 큰딸 집으로 피신했으나 남편은 할머니를 절도혐의로 고소까지 했다. 할머니는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 「망상장애」소견서를 받은 뒤 소송을 냈고 지난해 6월 위자료와 재산분할 등 7억여원을 받을 수 있는 승소판결을 받아 냈다.
그러나 남편의 항소로 이뤄진 2심에서는 『부당대우가 인정되지만 가부장적 권위는 혼인 당시 가치기준을 감안해 볼때 결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보기 어렵고 할머니는 오히려 정신장애 증상을 보이는 남편을 돌볼 의무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져 할머니가 패소했다.
할머니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8일 『원심판단은 정당하다』며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부부의 연령과 혼인기간, 혼인당시의 가치기준과 남녀관계를 참작한다는 것이 나이든 부부의 이혼을 허용할 수 없다든가 가부장적 남존여비 관념을 가지고 이혼을 제한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없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황혼이혼 등 가족해체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가부장적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했다는 여성단체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윤종열기자YJYU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