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함미 인양] 절단면 안전망으로 덮어 시신·파편등 유실 막아

4시간여만에 바지선 안착…밤늦게 2함대로


SetSectionName(); [천안함 함미 인양] 절단면 안전망으로 덮어 시신·파편등 유실 막아 4시간여만에 바지선 안착…밤늦게 2함대로 임세원기자 why@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두 동강 나 바다에 가라 앉은 지 20일 만에 들어올려진 천안함 함미는 처참한 사고 당시를 그대로 드러냈다. 군은 절단면에 그물로 된 두 겹의 초록색 안전망을 단단히 덮어 시신이나 파편의 유실을 막았다. 망 안으로는 계란 껍질이 깨진 것처럼 불규칙한 단면이 보였으며 그 속에서 부러지고 휘어진 철골이 삐져나왔다. 반면 함미 절단면의 반대쪽은 아래쪽에 붙은 스크루가 온전했으며 좌초할 경우 표면에 나타나는 흠(스크래치)이 없어 내부에 실종자가 있으리라는 기대치를 높였다. 이날 함미는 인양→배수→바지선 탑재→실종자 수색→평택항 이동의 과정을 거쳤으며 오전9시부터 밤 늦게까지 계속됐다. ◇오전9시 인양작업 시작=15일 오전8시44분, 실종자 가족들은 생환기원제를 열었고 오전9시부터 해군과 민간조사위ㆍ전문가그룹이 인양작업을 시작했다. 군은 2,200톤을 들어올릴 수 있는 대형 크레인을 쇠사슬 세 가닥으로 함미에 연결해 1분당 1.6m의 속도로 천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두께 90㎜, 길이 50m, 무게 7톤에 달하는 쇠사슬은 세 가닥이 1,200톤을 지탱할 수 있다. 인양을 시작한 지 22분이 지나자 함미 절단면이 수면 위로 노출됐다. ◇1시간여 뒤 배수 본격화=바다 위로 들어올리면서 함미의 구멍으로 자연히 물이 빠져나갔지만 900톤의 물 대부분은 펌프로 빼냈다. 1시간17분가량 이어진 인공배수가 끝나자 함미에는 배수할 수 없는 330톤의 뻘과 기름이 남았지만 처음의 절반(955톤)으로 가벼워졌다. 그 사이 함미를 평택항으로 실어나를 바지선이 현장에 도착했다. ◇4시간 뒤 바지선 탑재 완료=인양을 시작한 지 4시간여가 지난 낮12시11분 함미가 바지선에 안착했다. 크레인은 함미를 바지선 수직 위 22m로 들어올렸다. 바닥이 곡선인 함미를 고정하기 위해 바지선 표면에는 철제로 만든 거치대(틀)를 장착했다. 크레인은 함미를 흔들리지 않고 거치대에 내려놓기 위해 극도로 조심스럽게 작업을 이어갔다. 순조롭던 작업은 거치대가 무너지며 난항을 겪기도 했다. 거치대는 10개가 파손됐으며 군이 이를 용접해 고치느라 작업이 지연됐다. 그 와중에도 실종자 수색을 위해 실종자 가족을 포함한 민군 조사단 등이 위험을 무릅쓰고 함체에 들어섰다. ◇함체 진입 첫 실종자 발견=38명의 민군 조사단 등은 곧 서대호 하사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어 25구 정도의 시신들이 들것에 실려나왔고 그 후로도 계속 시신이 배 위로 올라왔다. 군은 바지선에 마련한 흰색 가림막 안에서 시신을 수습했다. 안에서는 시신을 알코올로 씻어낸 뒤 흰 천과 태극기로 감쌌다. 시신은 신원확인 후 헬기를 통해 임시 안치소가 있는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대기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운구됐다. 시신 수습과 별개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구원과 민간 전문가 등은 함체에 들어가 조사를 시작했다. 내부는 문틀이 휘어지고 각종 도구와 전선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단은 함체 안에서 전진하기 쉽지 않았고 수색은 예정했던 오후8시를 훌쩍 넘겼다. 1차 수색이 끝난 후 바지선은 함미를 실은 채 평택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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