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KB금융그룹의 내부갈등이 심상치 않다. 총 2,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은행 주(主)전산 서버의 아웃소싱 업체를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하는 KB금융지주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자회사인 KB국민은행이 반발한 것이 갈등의 핵심이다. KB국민은행은 결국 19일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이사회 결정에 항명하며 외부 감독기구까지 끌어들인 초유의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4월 KB지주 이사회의 전산 시스템 교체 의결에 대해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촉발됐다. 정 감사는 이번 교체과정에서 경쟁입찰 없이 수의계약 형태로 업체를 변경함으로써 절차상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입장이나 사외이사들이 포진한 이사회는 "전산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돼왔으며 교체 결정에 하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의 제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 감사의 이견 제출을 지지하는 이건호 행장이 곧바로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잖아도 KB금융은 지난해부터 주택채권 횡령사건을 비롯해 도쿄지점 부당대출, 신용카드 고객정보 유출, 임직원 대출비리 등이 줄을 이으며 리딩뱅크라는 기존의 위상마저 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이다. 작금의 내분사태를 금감원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금감원도 수차례 특별검사를 통해 문제점을 들여다봤으나 이번 기회에 은행 전체를 해부해 부실을 도려내겠다는 복안이다.
신뢰를 먹고 사는 은행이 이 지경까지 온 데는 물론 여러 원인이 중첩돼 있겠지만 주인 없는 금융사로서 권력층의 낙하산 먹잇감으로 전락해온 과거 전력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능력 대신 줄을 잘 서야 승진하는 내부인사 관행이나 실종된 직업의식 등이야말로 징후일 뿐이다. 감독당국은 이참에 내외부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해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