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 축소에 돌입한 가운데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ECB)도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사진) ECB 총재는 28일(현지시간)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유로존 경제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각국의 무역수지와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많이 포착되고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기준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드라기 총재는 시장에서 유로존 내 디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디플레이션 신호는 없다"며 "우리는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 같은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3·4분기 유로존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1%에 그치고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전년 대비 상승률 역시 0.9%로 ECB의 목표치인 2%에 크게 미달한 점을 들어 ECB가 금리인하 등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의 이번 발언으로 ECB가 조만간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됐다. ECB는 11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25%로 깜짝 인하한 뒤 12월 통화정책회의에서는 동결했다. 다음 통화정책회의는 내년 1월 9일에 열린다.
드라기 총재가 유럽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유럽 금융시장에서는 투자심리 회복에 따른 '안전자산 회피 및 위험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로 평가되던 미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막상 시행되자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개선되는 '테이퍼링의 역설'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런 현상이 유럽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독일 10년물 국채금리와 위험자산인 아일랜드 10년물 국채금리의 차이는 27일 1.5%포인트로 3년반 만에 가장 가까워졌다. 이는 투자자들이 독일 국채를 팔고 아일랜드 국채를 매수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외에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프랑스·영국·네덜란드의 10년물 국채금리 모두 27일 전거래일보다 0.1%포인트 내외로 큰 폭 상승(가격하락)했다.
단스케방크의 소렌 모에르크 채권투자부문장은 "이는 더 높은 이윤을 찾으려는 투자자들의 심리와 남유럽 경기회복세에 따른 것"이라며 "앞으로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가격차가 더욱 좁혀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