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등 기관 이달부터 대규모 쇼핑
순매수 상위 20개 중 6개가 은행·보험株
"장기 실적개선 기대주 중심으로 투자해야"
최근 미국·독일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채 금리 상승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1%대 후반에서 머물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3일 2.36%까지 치솟으며 최근 6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지난달 중순 0.04%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10년 만기 독일 국채 금리 역시 지난 13일 0.726%까지 치솟았다. 주요국의 금리 상승 여파는 국내 채권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금리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14일 1.857%를 기록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달 17일(1.691%) 대비 0.166%포인트 상승했다.
시장 금리 상승의 여파는 국내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사상 초유의 1%대 저금리를 등에 업고 지난달 23일 2,173.41포인트까지 상승했던 코스피는 글로벌 금리 상승에 따른 유동성 축소 우려가 불거지며 2,100선 초반까지 밀리고 있는 모양새다.
그동안 코스피 상승을 견인한 금리 변수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투자자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반등과 이에 따른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시장 금리가 향후에도 완만한 상승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금리 인상 국면에서 수혜가 기대되는 은행·보험 등의 업종을 중심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시 짤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과거 세 차례의 금리 인상 국면에서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한 IT·자동차·화학 등 경기 민감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 국채 금리 상승의 여파로 국내 시장 금리가 재차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금리 상승기의 수혜주인 은행·보험 업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 시장 금리가 '바닥'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히면서 그동안 은행·보험 업종 주가의 발목을 잡은 금리 인하 우려가 해소 됐을 뿐 더러 향후 업황 개선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달 초와 같은 가파른 금리 급등세가 재차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고 현재 금리가 더 이상 내려가기는 어려운 수준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국제유가·구리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에 힘입어 시장금리가 아주 완만한 상승 흐름을 보일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비싼 주식은 덜어내고, 싼 주식을 담는 투자전략이 정석인 만큼 저평가 종목과 업황 개선 모멘텀이 기대되는 은행·보험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시장전문가들은 그 동안 은행·보험 업종 주가에 악재로 작용해 온 금리 인하 변수가 해소됐다는 점이 단기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김윤서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금리가 추세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금리 하락 사이클 자체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보험 업종에 대한 장기 주가 할인 요인이 해소됐기 때문에 주가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연기금 등 국내 기관들이 은행·보험 업종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관은 이달 초부터 지난 14일까지 9거래일 동안 삼성생명(032830)(1,194억원)·삼성화재(000810)(478억원)·하나금융지주(086790)(301억원)·KB금융(105560)(299억원)·기업은행(024110)(215억원)·신한지주(055550)(194억원) 등을 순매수했다. 이 기간 기관의 순매수 상위 20개 종목 중 6개 종목이 은행·보험주일 정도다.
신세계그룹의 삼성생명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성공 사례 역시 은행·보험 업종에 대한 시장의 시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4일 장 마감 후 신세계와 이마트가 보유 중인 삼성생명 지분을 각 300만주 씩 총 600만주를 종가(11만6,500원) 대비 6.27% 할인한 주당 10만9,200원에 블록딜 방식으로 국내외 기관투자자에게 매각했다. 매각 규모가 600만주로 대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장 금리 상승에 따른 주가 상승을 기대한 국내외 기관들의 수요가 강하게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저금리 기조 속에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어 연기금들이 보험 업종 보유 비중을 줄였었다"면서 "하지만 최근 시장 금리가 상승 조짐을 보이면서 연기금들이 다시 보험 업종으로 눈길을 돌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가격 측면에서 저평가 매력 역시 주가 상승 기대감을 높인다. 이주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은행 업종의 12개월 예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4배로 지난 2011년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금리 인하 사이클이 마무리 국면에 진입하면서 실적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무작정 은행·보험 업종에 투자하기보다는 금리 상승에 따른 장기적인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개별 종목을 잘 골라서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시장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시중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약 1.2%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2·4분기 시중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이 3~5bp(1bp=0.01%)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업종 내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4분기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기업은행과 KB금융을 최우선 추천주로 꼽았다.
오진원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2·4분기 중 20조원 이상의 추가경정예산(추경) 논의와 안심전환대출 주택저당증권(MBS) 공급 등으로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2.60%까지 상승할 전망"이라며 "장기금리 상승에 따른 수혜가 큰 한화생명(088350) 등 생명보험사 중심으로 보험 업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경기 민감株도 주목 박준석 기자 과거 시장금리가 반등할 때 전기전자(IT)·자동차·화학 등 경기민감주들의 주가가 동반상승한 적이 많았다. 금리 상승은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물가 상승과 동행하는 만큼 수출 주도형 경기민감주들의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7일 KDB대우증권이 금리가 바닥을 찍고 상승한 과거 세 차례의 시기(2003년6월·2008년12월·2013년5월)에 국내 업종별 주가 등락률을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IT·자동차·화학 등의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통신·유틸리티·필수 소비재 등 경기방어주, 유통 등 내수주는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글로벌 금리와 국내 금리가 동반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난 2003년 6월13일 이후 3개월 간 디스플레이 업종이 29.2% 상승했고. IT가전(27.4%)·반도체(24.7%)·자동차(20.5%) 등이 뒤를 이었다. 철강(13.2%)·조선(14.1%) 업종 주가도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통신(-2.5%)·증권(-1.8%)·필수소비재(-1.9%) 등은 부진했다. 2008년 시장금리 상승기에도 경기민감주가 수익률 상위권을 독식했다. 지난 2008년 12월18일 이후 3개월 간 디스플레이(27.4%)·IT하드웨어(22.5%)·소프트웨어(21.0%)·반도체(16.0%)·IT가전(13.4%)·자동차(11.1%)·화학(7.8%) 등 업종의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13년에는 자동차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시장금리가 상승했던 지난 2013년 5월2일부터 3개월 동안 자동차는 12.6% 상승하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조선(11.9%)·화학(6.6%)·철강(5.8%)·디스플레이(4.6%)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과거 금리 상승 국면에서 항상 강세를 보였던 반도체(-14.7%)·IT하드웨어(-10.8%) 등 IT주는 매우 부진했다. 한요섭 대우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4월 고용지표가 양호한 흐름을 보이면서 글로벌 금리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국제유가의 반등 및 유로존의 경기 회복세 등으로 인해 글로벌 금리가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 3차례의 금리 반등 시기에 경기방어주나 내수주보다는 IT·자동차 등 수출 경기민감주가 강세를 보인 만큼 이들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