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매체는 사회적 갈등이나 긴장을 해소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국내언론은 오히려 갈등이나 긴장을 앞장서서 증폭시키고 있잖아요”
제30대 한국언론학회장에 최근 취임한 박명진(56) 서울대 언론정보학과교수는 신문과 방송, 신문과 신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게 패이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죠. 중재역을 해야 할 언론이 세대간, 이념간, 가치관간의 대치전선의 최전방에 나서 대리전쟁을 하고 있는 형국이니 얼마나 사태가 심각합니까"
지난 59년 한국언론학회 창립이래 44년 만에 첫 여성학회장을 맡아 앞으로 1년간 학회를 이끌어갈 박 교수는 70년대 후반 당시 미답지나 다름없던 문화 커뮤니케이션, 즉 영상문화쪽으로 국내 미디어 연구의 지평을 한 차원 넓힌 언론학자다. 지난달까지 KBS 1TV `TV 책을 말하다` 프로그램을 2년5개월간 진행해 시청자들과도 낯이 익은 박 교수는 “청와대에서 (언론과)휴전선언을 했으니 앞으로 조금 개선되지 않을까요”라고 농담을 던진 뒤 “이제 (이런 현실을)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언론이 대리전쟁하고 있는 상황을 학계에서 다루고 싶어도 너무 조심스러워 정면으로 다루지 못해 왔지만 이제는 깊이 천착할 때가 됐습니다. 그러나 언론학회는 다른 시각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접근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국내 언론인의 `커리어 패스(직업경로)`를 총체적으로 들여 다 보는 심층 연구작업이 학회차원에서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우리 나라의 폐쇄적인 언론현실과 언론산업 구조를 감안해 볼 때 전문 언론인의 직업경로를 고찰해 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연구가 될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언론인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과정을 거쳐 데스크를 지내고 편집ㆍ보도국의 수장이 되는지 일련의 커리어 패스를 연구하면 언론이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점도 아울러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언론학회가 오는 12월 12일 `언론인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첫번째 언론학포럼을 열기로 한 것도 학회 차원의 언론인 연구와 궤를 같이 하는 대목이다. 내년초에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외국의 케이스를 연구검토해 우리의 언론인 현실과 비교분석하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니스대학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뒤늦게 방송영상을 공부해 파리 제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럽파. 동아방송 PD로 방송현장에 몸담은 경험이 있고 유네스코 홍보분과위원, 문화관광부 문화비전 2000추진위원,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 방송개혁위원 등을 두루 지냈다. 박 교수의 남편은 이교일(61)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공학부교수다.
<조충제기자 cjch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