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돌아서면 그리운… 인사동 그 거리


인사동에는 고화랑과 패스트푸드점 등 과거와 현재가 병존한다. 이같은 현실은 부조화와 불협화음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화현상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박영홍(프리랜서)

[리빙 앤 조이] 돌아서면 그리운… 인사동 그 거리 우현석기자 hnskwoo@sed.co.kr 그래픽=이근길기자 인사동에는 고화랑과 패스트푸드점 등 과거와 현재가 병존한다. 이같은 현실은 부조화와 불협화음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화현상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박영홍(프리랜서) 관련기사 • 그밖의 인사동 명소들 『 목선이 늘씬하게 잘 빠진 고려 청자와 조잡한 싸구려 옹기가 한데 어우러지고 누렇게 변한 한가로운 옛 문인화와 이름 모를 서투른 정물화가 나란히 걸려 있는 곳, 삐걱거리는 오래된 반닫이 옆에 빛깔도 고운 세련된 한복이 놓이고, 가슴까지 뜨끈한 십전대보탕과 향긋한 에스프레소가 함께 유혹하는 곳, 상투 튼 노인이 햇볕 속에 졸며 앉아 있고 그 앞에서 귀를 세 개나 뚫은 젊은이들이 궁합을 보는 곳, 좁은 골목 마다 버티고 있는 한옥 사이로 한 두 시간쯤 족히 때울 수 있는 큰 갤러리가 숨어 있고, 잿빛 스님이 휘적휘적, 카메라 든 외국인이 두리번두리번, 소박한 가게의 고풍스런 서까래와 모던한 인테리어 장식이 동시에 눈을 잡아 끄는 곳, 향 냄새, 된장 냄새, 꽃 냄새, 그리고 사람 냄새…. 이제야 알겠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인사동에 가고 싶어하는지. 왜 인사동에만 가면 온갖 시름들이 다 날아가는지. 』 2002년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에서 펴낸 책 ‘인사동 가고 싶은 날’의 서문에 그려진 인사동 풍경이다. 인사동이라는 거리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붙여진 것은 지난 84년 11월. 길이 0.7㎞, 너비 12m의 길 이름은 이 길이 통과하는 중심지인 인사동에서 유래했다. 안국역에서 가다보면 크라운베이커리 초입에서 시작되는 인사동의 행정구역은 관훈동이고, 실제 인사동은 사거리 남쪽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이 거리에서 행정구역을 구분하는 짓은 부질 없다. 고미술상 77곳, 화랑 87곳, 표구ㆍ지필묵 상점 56곳, 공예ㆍ한복집 18곳, 전통찻집ㆍ음식점 169곳 등 700여개의 점포는 이미 인사동라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뭉뚱그려졌기 때문이다. 눈길 머무는 곳 마다 시간의 더께가 앉아 있고, 평일에는 5만 명, 주말에는 20만 명의 사람이 찾는 곳. 그래도 오래된 서울의 모습을 곳곳에 보존하고 있는 그 곳. 이 글은 발길을 돌리면 이내 그리워지던 그 거리로의 완상(玩賞)이다. ● 화랑·고서점 등 700여곳 모인 거리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과 낭만 서려 인사동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매니스 앨리(Many's Alley)로 불린다. 우리 말로 해석을 하자면 '많은 것들이 널린 골목'정도다. 영어로 들어도 정감 있는 인사동 길의 전면에는 쌈지를 비롯한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 거리에는 좁은 점포와 고화랑들이 옛 것을 보듬고 있다. 김영복 문우서림 대표의 글 '책방을 순례하던 시절'에 따르면 이 길에 골동품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6.25이후 부터. 충무로, 을지로에 있던 골동품 가게들이 난리통에 풍비박산이 되자 갈데 없어진 이들이 하나, 둘 인사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청계천의 복개와 고가도로 건설도 인사동의 형성에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서울 한복판을 까뒤집는 공사가 길어지자 북새통을 견디다 못한 고서적상, 골동품상들이 속속 모여 든 것이다. ■3대 98년째 이어오는 필방 하지만 이들이 인사동에 문패를 걸기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있던 터줏대감들도 적지 않다. 고서점중에서는 1934년 금항당으로 문을 열어, 해방직후 상호를 바꾼 통문관이 가장 오래 됐다. 통문관은 인사동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점인데 국어학자 이희승, 최현배 등 당대의 학자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한 때 국어학회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던 통문관은 고려때 중국에서 통역을 하던 관리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를 상호로 쓴 것은 이 곳이 사람과 책을 연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갤러러중에서는 통인가게가 가장 오래됐다. 통인은 지난 24년 김정환 대표가 문을 연후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통인은 지하에 공예품, 1ㆍ2층에는 자기ㆍ공예품, 3층에는 고가구를 전시 판매하고 있다. 이밖에 우림, 선화랑, 가나아트, 경인, 노화랑, 학고재, 동산방 화랑도 인사동을 지켜온 오랜 화랑들이다. 하지만 모든 업종을 통틀어 인사동에서 가장 오래된 점포는 지필묵을 판매하는 구하산방(九霞山房)이다. '첩첩산중에 있는 신선들의 집'이라는 의미의 구하산방은 지난 1910년 문을 열어 3대 98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종이, 먹, 벼루, 붓 등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지필묵을 취급하는 곳으로는 구하산방 외에 박당표구, 명신당필방, 유아당 등이 있다. ■이율곡ㆍ박영효ㆍ이완용이 살던 곳 인사동에는 역사적 명소도 적지 않다. 인사동 194번지 현 태화빌딩 자리는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체포됐던 태화관 자리였는데, 이 집은 한 때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의 집이기도 했다. 그 옆 하나로 빌딩 공터에는 1896년 설치된 서울중심점 표지석이 놓여있다. 또 222번지는 효종 때 북벌을 꿈꾸던 훈련대장 이완 장군의 집터이며, 197번지는 이율곡이 살던 곳이다. 지금은 경인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는 관훈동 30번지는 철종의 부마 박영효가 살았고, 교동초등학교 자리인 경운동 2번지에는 비운의 혁명가 조광조의 미련이 아직도 서려있다. ■한정식 등 맛집은 아직도 즐비 인사동은 고서적과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그 유명세에는 맛깔진 손 맛을 자랑하는 한정식 집들도 일조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정식집 · 전통찻집 등은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이 거리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집은 선천이다. 이 집은 평안북도 선천 출신인 박영규 사장(75)이 69년에 문을 연 이후 아직까지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우리가 평안도 출신이기는 해도 음식으로 따지면 김치만 평북식일 뿐 다른 음식들은 남한 음식으로 보면 된다"며 "김치하고 된장 만큼은 미련과 애정이 남아 아직도 재래식으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고 했다. 선천과 한 집 건너 있는 사천도 선천 보다 몇 개월 늦게 문을 열었다. 이후 수 많은 한정식 집들이 들어섰지만 상당수가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아직 남아 있는 전통의 명가로는 서울 음식을 잘하는 한성과 은정, 전라도 정읍식 김치가 맛있는 삼정을 꼽을 수 있다. 이밖에 유명한 곳으로는 올갱이국을 잘하는 풍류사랑이 있고, 삼정 옆에 있는 섬진강은 재첩국이 시원하며, 절음식 전문점 산촌은 뉴욕타임즈에 소개되기도 한 웰빙 식당이다. ■매년 4월에 축제 열어 인사동에는 고미술상, 표구점, 지필묵 상점, 화랑과 고서적상 등이 중심이 된 '전통문화보존회'와 전통음식점, 찻집이 주축이 된 '문화지구지킴이 인사동 식구들' 두 단체가 있다. 전통문화보존회가 창립된 것은 지난 87년 6월 1일. 전통문화보존회(이하 보존회)는 창립 첫 해부터 종로구와 함께 해마다 4∼5월경에 인사동문화축제를 개최, 전통예술공연ㆍ문화상품특별전과 함께 화랑 20곳에서 기획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김병욱 보존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10월 28일에는 서울시가 자금을 지원하고 보존회가 운영을 하는 형식으로 홍보관을 개관했다"며"올해에는 4월말에 인사동 축제, 4월 25일부터 5월1일까지 미술축제를 개최할 계획이며, 행사 중에는 방문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이벤트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사무국장은 "보존회와 서울시는 지난 해 파리 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몽마르트 문화교류 협력단을 통해 파리 작가들의 미술 작품 등을 가져와 인사동에서 전시를 하고, 인사동의 고미술, 현대미술, 공예품 등을 가져가 전시를 하기도 했다"며"앞으로 이 같은 문화교류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동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모임인 문화지구 지킴이 인사동식구들(이하 지킴이)은 한 때 회원이 120개 업소에 달했지만 현재는 많이 줄어서 80개 안팎이 등록돼 있다. 오정식 지킴이 부회장은 "얼마 전까지 커피전문점, 양식집 등이 들어서면서 전체 요식업소 수는 늘었지만, 종로구청에서 제정한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지침에 따라 권장 업종 외에는 인사동 메인 거리에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며"이후 회원 가입을 하는 요식업소 숫자는 줄어들고 있으나 인사동거리의 정체성 확립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최근 들어 훼손되고 있는 인사동 정체성의 확보 문제는 보존회와 지킴이가 고민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화두다. ■정체성 확보 시급한 화두 보존회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근 5~6년간 인사동에는 외형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었다"며 "가장 두드러진 것은 화랑은 대로 뒤편으로 밀려나거나 인사동 밖으로 둥지를 옮기는, 대신 정체 불명의 업소들과 노점상 숫자가 크게 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중 일부는 값이 저렴하고 조잡한 중국ㆍ동남아산 기념품들을 팔고 있어 인사동을 국적 불명의 거리로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 인사동의 한 상인은 "이 같은 정체성 훼손의 원인은 최근 들어 폭등한 임대료에 기인하다"며"임대료가 오른데다, 경기침체로 값비싼 그림이나 공예품이 팔리지 않자 상당수 점포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저가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부터인데, 특히 건물주가 바뀌면 한번에 200~300%씩 올리는 경우도 있다"며 "인사동 메인 도로변의 경우 5평짜리가 점포 기준, 보증금 1억원에 월세가 5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기에 세금ㆍ관리비까지 감안하면 월 700만원은 가져야 간신히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원화 환율이 올라 일본ㆍ미국 관광객의 발길도 끊어졌다"며"지자체나 문광부에서 인사동을 제대로 보존할 생각이 있다면 세금 혜택이라도 줘야지, 이대로는 정말 못버티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입력시간 : 2007/03/14 13:44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