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在日총련계 어깨펴고 살기를…"

조총련 소재 日영화 '박치기'
감독 이즈쓰 가즈유키, 주연 다카오카 소스케
"30여년전 영화배경과 지금 상황 달라진 것 없어
심각한 주제 신나게…작년日언론, 베스트 선정"
심각한 주제 신나게…작년日언론, 베스트 선정

영화‘박치기’의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왼쪽)과 주인공 이안성 역의 다카오카 소스케.

영화‘박치기’는 총련계 재일 조선인이라는 자못 심각한 소재를 신나고 유쾌하게 다룬다. 설사 재일 조선인 문제를 모르더라도 관객들이 이 영화를 웃으며 받아들이기엔 문제가 없다. 사진은 여주인공 경자와 그녀를 좋아하는 일본인 친구 코우스케가 함께 공원에서 연주하는 장면.

영화 ‘박치기’는 참 묘한 지점에 서 있다. 한국에서 유달리 인기가 좋은 ‘러브레터’의 이와이 슈운지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누도 잇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과는 분명 다른 감성이다. 이들 영화가 객석을 따뜻하게 감싼다면 ‘박치기’는, 참 신나게 달린다. 마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는 듯한 사춘기 젊은이들의 고민과 방황을 다룬 영화 ‘박치기’는 특히 다루는 소재가 한국 관객들에게 독특하게 다가온다. 순도 100% 일본인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총련계 재일 조선인 이야기라니. TV용 다큐멘터리로나 어울릴 법한 소재를 영화는 경쾌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객석에선 10분에 한번씩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사히신문, 닛칸스포츠, 키네마준보 등 일본 언론들은 하나같이 지난해 최고의 영화로 이 작품을 선정했다. 이 쯤 되면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이 궁금해진다. 마침 지난 12일, ‘박치기’의 이즈쓰 가즈유키(54) 감독과 ‘이안성’ 역의 남자주인공 다카오카 소스케(24)가 한국을 찾았다. 그들을 만났다. 왜 재일 조선인 같이 미묘한 문제를 다뤘는지를 물었다. 대답이 참 유쾌하다. “사고 한번 치고 싶었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주말엔 매진이란다.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이보다 더 기쁠 수가! (웃음) 사실 한국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한국에선 일본 영화가 별로 인기가 없다는데, 관객들이 내 영화를 거절하지 않은 게 기쁜 일이다. 역시 영화는 국경을 초월해 공통된 감성을 낳는 예술이다.”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나. (가즈유키)“86년에 처음 서울에 들렀다. 그 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참석차 왔는데, 난 ‘태양을 쏘다’라는 영화를 출품했다. 2차 대전 후 전쟁 후유증을 다룬 영화였는데, 서울 관객들이 굉장히 많이 즐거워 했다. 나중에는 영화에서 총만 나오면 다들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굉장히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어제 밤 ‘박치기’ 무대인사를 나섰는데, 한국 관객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열광적이라서 좋다.” (다카오카 소스케)“2년전 부산영화제가 첫 방문이었다. 부산은 참 좋았다. 바다도 있고, 술집도 좋고. 서울은 처음인데, 스케줄 때문에 호텔 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어 너무 불행하다.” -재일 조선인 문제라는 묵직한 소재를 다루는데 관객들은 마냥 웃어주기만 한다. 서운하진 않은가. (가즈유키)“진지한 얘기를 웃기게 만드는 게 처음부터 의도한 바였다. 영화 속 무대인 총련학교는 남과 북, 일본이 어우러진 매우 독특한 공간이다. 한국 관객들이 모르는 세계이다 보니 다소 놀라웠을 거다. 그 놀라움이 유머로 발전했을 테고. 아마 그들의 문제를 솔직하고 무겁게만 보여줬으면 누가 이 영화를 보러 오겠나.” -원래 한국어를 할 줄 알았나? 일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한국어 발음이 매끄럽다. (소스케)“주위에 재일 한국인 친구들이 꽤 있어서 한국어에 대한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사실 한국어 만큼이나 큰 부담은 사투리였다. 영화 배경이 교토여서 간사이지방 사투리를 써야 했는데, 난 도쿄 출신이어서 표준어밖에 할 줄 몰랐다. 사실상 2개 언어를 배운 셈이다.” -재일 조선인 문제를 상업영화로 다루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는지. 당사자가 아닌 일본인의 눈으로 말이다. (가즈유키)“민감하기 때문에 일본 내 메이저 영화사들은 만들 생각도 못 한다. 제작자(이봉우 씨네콰논 사장)와 함께 큰 사고 한 번 치자는 느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확신범인 셈이다. 30년간 영화를 만들어 왔는데, 이런 얘기에 한번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본 사회에 큰 못을 하나 박고 싶었다. 영화 배경인 68년이나 지금이나 재일 조선인 문제에서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소스케)“예전 여자친구가 재일 조선인이었다. 그 분 어머니께 자신들이 일본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많이 들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건 너무 부당하지 않은가. 실제로 영화 개봉 후 재일 조선인들로부터 편지를 많이 받았다. 언젠가는 그들이 일본에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가즈유키)“(하나만 더 얘기하겠다며)재일 조선인 뿐 아니라 부락민에 대한 차별이 사실 더 심각한 문제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에 이처럼 많은 차별이 있다는 자체가 국제적으로 이상하다. 그들은 일본에서 특별한 존재고, 영화적으로도 독특한 소재들이다.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의 얘기보단 특별한 사람들 이야기를 의미있게 다루고 싶다. 늘 ‘킹콩’같은 블록버스터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아~ 사실 ‘킹콩’이야말로 정말 특별한 존재이긴 하다.(웃음)”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특히 소스케는 외모로 보나 한국어 실력으로 보나 한국과 많이 친해질 것 같다. (소스케)“‘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츠마부키 사토시가 한국에서 인기가 높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친구야 산뜻한 청춘 스타지만, 난 얼굴이 좀 거칠지 않은가. (웃음) 뻔한 얘기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다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TV드라마는 사양한다. 영화가 좋다. TV로서는 할 수 없는 얘기가 너무 많다.” (가즈유키)“마이너리티 문제를 다루는 건 내 영화 철학의 기본이다. 물론 예술영화가 아닌 상업영화로 아니다. ‘박치기’가 그런 면에서 스탠스가 참 좋다. 어찌 보면 나의 전매특허 같은 영화세계다. 앞으로도 사고 많이 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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