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도 씁쓸한 현대인 이야기

■ 말하자면 좋은 사람
정이현 지음, 마음산책 펴냄


"… 텔레비전의 성탄 특선 영화는 '나 홀로 집에' 였다. 우와, 개봉한 지 얼마 안된 건데. 큰 오빠가 말했다. 둘도 없는 행운이라는 투였다. 크나큰 행운만큼 기쁜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었다. …"('또다시 크리스마스' 중)

크리스마스 이브, 남은 된장찌개에 멸치볶음 따위로 저녁을 먹은 여섯 아이, 이튿날엔 그래도 성탄절이라고 계란후라이와 귤이 하나씩 돌아간다. 가난한 즐거움도 갈라선 부모를 따라 흩어지고, 아이들은 20여년 후 아버지 장례식에서야 다시 만난다. 가난은 여전히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지만 오가는 말 속에 가슴 먹먹한 따뜻함이 내려앉는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작가 정이현이 등단 초기에서 최근까지 발표한 짧은 이야기 11편을 다듬어 묶었다. 간결하고 담담한 말투로 그는 이 도시 어디선가 일어났을, 그저 그런 삶의 그럴 법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천신만고 끝 입사한 첫 날 책 구매를 강요당하는 신입사원, 페이스북 속 빛나는 가짜 '나'로 권태로움을 이기는 아내, 다 성사된 국제결혼 직전에 역시 '선택 결정 장애'가 찾아오는 남자까지. 그가 그리는 건 누추한 일상의 비루함보다는, 혼자임을 깨닫는 순간의 막막함에 가깝다.

또 이별 후 막연히 시티투어버스를 타러 온 '다른' 두 남녀, 인터넷 동갑모임 친구들의 결혼에 문득 허전해진 여자 '고하이갱', 폭설이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문득 서로가 낯설어지는 연인. 흔들리는 젊음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1만2,0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